viiii) 안수정등(岸樹井藤)의 상황!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viiii) 안수정등(岸樹井藤)의 상황!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2020년 1월과 2월 중국 발 코르나 바이러스(COVID 19)가 중국과 한국을 강타하며 온 국민을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을 때, 전쟁, 지진, 화산 그리고 태풍이 없는 ‘신의 고향’ 브라질에 있는 나에게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더욱이 여기는 한 여름이었으니.
그러나 2월 말 카니발 연휴에 고향 이탈리아에 다녀온 사람이 코로나 확진 환자로 발표되면서 브라질에도 공포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브라질 정부의 ‘긴급상황’ 선포로 자동차 판매는 중단되었고 공장 또한 생산을 중단했다. 설상가상으로 3월의 마지막 날 동료 중에 한 명이 코로나로 확진되어 그와 밀접 접촉자인 나는 하는 수 없이 2주간의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외부와의 통신은 가능했지만 감옥의 독방에 감금된 것보다 더 심한 공포가 엄습했다. 내 몸 안에 이미 바이러스가 침투에서 내 몸을 숙주 삼아 세포 분열을 거듭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바이러스가 증식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스스로 환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아침에 35.8도였던 체온이 저녁에 37.3도가 되니 긴장이 시작하더니, 급기야 다음날 오한과 근육통이 오니 이건 확실한 징후라 생각되어 공포에 빠지기 시작했다. 일단 타이레놀을 먹으면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을 되뇌며 스스로 지어 내는 마음의 병에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하였다. 그렇게 이 주일을 혼자 집에서 버티고 출근하니 일터에 나와 일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삶의 원동력이고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제 출근하여 현실에 돌아오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는 현재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위기 상황’에 처해 있음을 숫자로 인식하게 된다.
“한 나그네가 아득히 펼쳐진 광야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사방에 불길이 일어나고 그 불길에 놀란 미친 코끼리가 나그네에게 달려들었다. 코끼리를 피해 달리다 보니 작은 우물이 나왔다. 우물 안이 안전할 것 같아 거기에 드려진 칡넝쿨을 타고 내려갔다. 겨우 한숨 돌리고 보니 우물 바닥에는 세 마리의 큰 이무기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다. 위를 보니 여전히 미친 코끼리와, 독사들까지 노려보고 있다. 무슨 소리가 들려 주위를 살펴보니 흰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나그네가 잡고 있는 칡넝쿨을 갉아먹고 있어 언제 끊어질지 모른다. 그때 넝쿨이 감고 있는 벼랑 끝 나무 위의 벌집에서 꿀이 한 방울씩 나그네 입 속으로 떨어졌다. 달콤한 맛에 취해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상황도 잊은 채, 나그네는 꿀을 더 받아먹으려고 입을 크게 벌리고 등나무 줄기를 타고 우물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니 더욱 위험해진다.”
'안수정등(岸樹井藤’ 이란 벼랑에 간신히 버티고 서있는 나무(岸樹)와, 그 나무에 의지하여 우물 안으로 내려온 칡넝쿨(井藤)을 말한다. 나그네는 우리 인간이고, 오도 가도 못하고 언제 칡넝쿨이 끊어져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눈앞의 욕망에만 탐닉하여 위험에서 깨어 나오지 못하는 인생을 비유하는 것이다. 미친 코끼리는 인생행로에서 갑자기,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불행의 운명이요, 칡넝쿨은 실낱 같은 목숨이요, 흰 쥐(해와 낮)와 검은 쥐(달과 밤)는 목숨을 잠시도 쉬지 않고 갉아먹는 세월이요, 우물 밑바닥은 황천(黃泉)이요, 세 마리의 이무기는 탐진치(貪嗔痴) 삼독(三毒)이요, 꿀은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이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이 비유는 불가(佛家)에서 생사 해탈을 공부하기 위한 유명한 화두(話頭)였다. 수양이 깊은 유명한 선지식(善知識)들은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깨몽)”고 말했다. 즉, 안수정등의 상황은 한낱 악몽이니 거기서 깨어나면 생사를 다 초월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 같은 범인(凡人)에게는 별로 와닿는 느낌이 없다.
어떤 선지식은 “달다”라고 대답하였다. 요즘 유행하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처럼 죽을 때 죽더라도 ‘현실을 받아들이고(Carpe Diem),’ 꿀 맛을 즐기라는 의미인 것 같다. 모든 현실적이고 육체적인 불안과 고통을 초월하는 정신세계를 보여주니 단순한 ‘깨몽’보다는 고차원의 답변이지만, 파부침선(破釜沈船)의 각오로 치열한 제1전선에 나와 있는 우리 같은 야전군에게는 너무나 무기력한 말이고, 지금까지 키워 온 가치관과 정서와는 맞지 않으니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비유는 비유이고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아득히 펼쳐진 광야’는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 삶의 현장이요, 미친 코끼리는 코로나 바이러스이고 우물과 독사들은 우리를 둘러싼 위험한 환경이다. 아직 우리는 안수정등의 상황에 있지만 이젠 그만 꿀 맛에서 벗어나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박차고 올라 나와야 한다. 아슬아슬한 칡넝쿨이 끊어지기 전에 나와서 독사와 싸우고 미친 코끼리를 피해서 다시 광야로 달려 나가야 한다. 그렇게 결심하는 순간 우리 안의 두려움은 사라지기 시작하고 도전의 용기는 우리를 지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