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물에는 코뚜레가 없다
x) 물에는 꼬뚜레가 없다
브라질에서 10년 가까이 살며 자연을 관찰하다 보니 사주 명리학(四柱命理學)의 기본인 오행(五行: 水. 木. 火. 土, 金)의 상생(相生) 관계를 쉽게 이해하게 된다. 브라질의 우기에 내린 비는 대지를 풍요롭게 하고 만물을 흐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빗물은 사탕수수를 키워 울창한 숲을 이루게 하니 수생목(水生木)이요, 사탕수수에서 나온 에탄올을 자동차에 넣어 엔진의 불을 일으키니 목생화(木生火) 요, 우기의 많은 번개 불은 땅에 스며들어 질소를 생성하며 대지를 비옥하게 하니 화생토(火生土) 요, 철광석 등 브라질의 많은 자원은 땅에서 나니 토생금(土生金) 이요, 지하에 광석 암반이 있어야 물이 고이고 샘물로 솟아나게 하니 금생수(金生水)가 된다.
상생(相生)이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같이 자연의 순리와 조화를 말한다. 이 같은 순리를 인간이 따라야 할 도덕규범으로 보고 자연의 물처럼 살아가라고 주창한 이가 노자(老子)이며, 그의 대표적 가르침이 ‘상선약수(上善若水)’이다. 상선약수란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The highest virtue is like water)’는 뜻이다. 물은 항상 자기를 낮추어 낮은 곳으로 흐르는 덕이 있고, 만물과 화합하며 남을 깨끗하게 하되 억지로 자신의 모습을 고집하거나 드러내지 않으며, 서로 앞서 가기를 다투지 아니하고 (流水不爭先),
바위를 만나면 몸을 나누어 비껴가지만 한 방울 한 방울로 바위를 뚫고, 때론 홍수가 되어 거대한 산도 허물어 버리는 힘이 있으니 물처럼 선하게 살라는 것이다. 물에는 꼬뚜레가 없다.
이 상선약수를 처세 신조로 삼은 유명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반 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다. 그가 2014년 오바마 대통령의 생일 선물로 ‘상선약수(上善若水)’란 휘호를 손수 붓글씨로 써서 주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물은 은근과 끈기가 있어 강하듯이 그와 상통하는 것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사성어가 ‘우공이산(愚公移山)’이다. 어리석은 영감이 산을 옮긴다는 말로 남 보기에는 미련한 짓 같지만 한 가지 일을 은근하고 강인한 끈기로 추진하다 보면 하늘이 도와 언젠가는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는 비유이다. 愚公(우공)이라는 아흔이 다된 영감이 있었고, 그의 집 앞에는 거대한 산이 길을 막고 있어 대처에 드나들려면 멀리 산을 돌아다녀야 했다. 영감은 그것이 불편하여 온 가족을 동원하여 그 산을 파 헤쳐 옮기기로 했다. 자신이 죽으면 아들과 손자기 그 일을 이어 몇 백 년에 걸쳐서라도 산을 옮기겠다는 영감의 강인한 끈기에 옥황상제가 감동하여 두 산을 옮겨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제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우공이산’! “그럼 나는 내 인생에서 우공이산의 실제 사례를 만들어 본 적이 있는가”라고 자문(自問)하게 된다. 자신 있게 내세울 만한 사례가 금방 생각나지 않는다.
견강부회(牽强附會) 격으로 굳이 하나 내세운다면….
거의 20년 전 일이다. 미국에 공장을 세우려고 남부의 한 실업률이 높아 일자리 창출이 절실한 주 정부와 협상할 때였다. 주정부는 공장 부지로 200만 평을 99년간 1년에 1달러만 받고 땅을 리스로 제공할 터이니 거기에 공장을 건설하라는 제의를 했다. 다들 좋은 조건이라며 찬성하고 받아들일 찰나였다. 그때 내가 한마디 했다. “난 한국 농부의 자식이다. 농부는 땅에 대해 강한 집착이 있다. 우리 공장을 짓는 땅만큼은 우리 이름으로 소유권 등기를 해야 안심이 된다. 그러니 리스가 아니라 완전한 소유권을 달라.” 이에 주정부 변호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주 헌법상 사기업에 땅을 무상으로 소유권 이전해 줄 수 없다.” 나는 더 단호하게 맞받아 쳤다. “그러면 그 헌법을 고쳐라.”
이 한 마디로 협상을 결렬되었고 자존심 상한 주정부 대표들은 서류를 집어던지고 퇴장해 버렸다. 난 협상 결렬의 원인 제공자로 찍혀 얼마 동안 온갖 비난의 말을 다 들었다. 그러나 며칠 후 투자청장이 날 은밀히 찾아와 조건을 이야기했다. “땅의 소유권을 넘겨주기 위해서는 주 헌법의 개정이 필요하고, 그것은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국민투표에서 가결될지 여부는 아무도 모르니 일단 투자 계약서를 체결하고 공장 건설을 시작해라. 국민투표에서 가결되면 땅 소유권을 넘겨주겠다.”
일단 투자를 유치하고 보자는 속 셈이 보였으나 난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 후 몇 달 동안 주 정부 사람들을 찾아가 끈질기게 재촉하고 졸라 국민투표를 하게 했다. 하늘이 도왔는지 놀랍게도 주 헌법 개정안은 가결되어 200만 평 땅에 대한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한 번에 받아 냈다. 촌놈의 우직한 승리였다고 자부한다. 기업을 위해서는 전봇대 하나도 옮겨 주기 힘든 한국의 현실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게 나의 ‘우공이산’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어쩐지 좀 쑥스럽다. 산이 아니라 평지인 땅의 소유권을 옮긴 것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