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정 Apr 29. 2024

어두워져 가는 밤, 경쾌한 카톡 알림

#수필 9




  늘 잔잔한 휴대폰에, 경쾌한 카카오톡 알림음이 울립니다. "카톡!" "이상하다. 이 시간에 연락 올 사람이 없는데" - 저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사적인 연락에 아주 큰 스트레스를 받는 타입이라서 용건이 없으면 연락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 프로필 사진을 들여다보니 익숙한 뒤태가 보입니다. 5년 전, 고등학교의 복도를 함께 거닐었던 고맙고도 소중한 친구입니다.





  한동안 그녀를 잊고 살아왔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녀의 존재가 희미해져 갈 때마다, 그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무정, 무정!!" 그녀는 늘 이런 식이 었습니다. 몇 개월에 한 번, 몇 년에 한 번, 아무런 용건 없이 제가 생각났다는 이유만으로 은둔 생활을 하는 제게 연락을 보내오는 친구였습니다.






  그녀의 연락에 잠시 당황했다가, 이내 흐뭇한 미소를 띠웁니다. 그녀의 연락에 가슴 한편이 훈훈하게 데워 짐을 느낍니다. 그리고 고민합니다. "이번에는 정말, 형식적으로 다음에 보자고 하지 말고, 만나러 가볼까?"




  저는 사실 겁쟁이입니다.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가 친구가 저를 불편해할까 봐, 절대로 먼저 연락하지 않았던 제게 실망감을 표할까 봐, 섣불리 약속을 잡지도 않고 나가지도 않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렇게 살다 보니, 제가 좋아했고 사랑했으며, 고마워했고, 감사했던 사람들을 속수무책으로 떠나보내었습니다. 제가 관계를 유지할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상대가 제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 각별한 사람인가" 아니라 "상대가 저를 필요로 하는가"였습니다.





  누군가 저의 존재로 기뻐할 수 있다면, 제 말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저를 통해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면, 제가 이번 만남에서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느낀다면 그때서야 비로소 상대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서, 긴장을 풀고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 이러한 태도로 인해서 저의 본모습을 아는 사람은 애인 관계에 있던 사람들 밖에 없었습니다 -





  참 감사합니다. 제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두껍고도 단단한 벽 너머로 아무렇지 않게 안부인사를 건네는 친구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과거의 저는 어리석고, 미련하며, 타인을 기쁘게 하는 데에는 영 소질이 없었을 텐데도, 그랬던 저의 미숙한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친구임에도 저를 찾아준 것에 대하여 너무도 감사합니다.





  아마도 과거의 저는 현재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꽤 괜찮은 사람이었나 봅니다. 저는 이번에 반드시 그녀를 만나러 갈 것입니다.

이전 08화 천천히 먹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