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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작가 Apr 26. 2024

천천히 먹기로 했다

#수필 8




  식사는 누군가에게 삶의 즐거움 일 수 있습니다. 식사는 누군가에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식사는 누군가에게 몸의 영양소를 공급하는 일종의 루틴일 수 있습니다. 식사는 누군가에게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유지시켜 주는 '의례'일 수 있습니다. 식사는 누군가에게 자신을 보살피고, 자신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제게 있어서 식사는,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고, 몸의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수단이었습니다. 항상 시간에 쫓기며 지친 몸을 이끌고 갖게 되는 식사 시간에서 여유를 부릴 수 없었습니다. 음식의 맛과 향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고, 입에 구겨 넣기 바빴습니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그릇이 비어졌고, 저는 늘 더 많은 음식을 원했습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을 하던 시기에는, 포만감을 좀처럼 느끼지 못했고, 너무 많이 먹는 바람에 숨을 쉬기 불편해질 때까지 먹었습니다. 때로는 지루하고도 따분한 대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습관적으로 음식을 먹다 보니, 토할 때까지 먹게 되어 집에 돌아와 뱉어내기도 했습니다. - 제가 평소 활동량이 많아서 몸무게가 많이 늘어나지 않음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



  


  저는 식사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제 자신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고, 영양소를 공급하기 위한 식사 때문에 '요리'를 하는 것은 제게 있어서 사치일 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제가 입으로 구겨 넣는 음식들이, 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집에 방문했을 때, 저는 절대로 차가운 삼각김밥이나, 냉동 닭가슴살, 라면 따위를 대접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리를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인터넷을 뒤져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노력할 테죠. 그러나 저는 저 자신을 좋아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자동차에 기름을 넣듯, 어쩔 수 없이 음식을 공급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식사시간 후에는 언제나 '후회'만이 남았습니다. 저도 알고는 있었습니다. 삼각김밥과 라면, 냉동식품 따위는 제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요. 더 신경 쓸 수 있음에도, 귀찮아서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남들보다 빨리, 많이 먹었기 때문에 식비로 인한 지출이 컸지만, 음식에 지출한 돈만큼 가치 있는 식사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음식의 맛도 모르고 먹었으니까요.





  아침만 되면 거울 앞에 서있는 제 몸을 보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몸에 지방이 붙어있는 것을 경멸하는 저는 볼록해진 배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계속해서 이러한 식습관을 유지했다가는, 추후에 가정을 꾸렸을 때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습관적인 폭식을 하지 않기 위해서 위를 줄이기로 했습니다. 한동안은 고통스럽겠지만, 먹는 양을 대폭 줄임으로써 위가 쪼그라들게 만들고, 추후에도 허기짐을 덜 느끼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점심에 많이 먹고 저녁을 먹지 않은 후에, 빨리 잠에 드는 전략입니다. - 이 전략은 성공했습니다. 다만, 오후 7시만 되면 졸려오기 시작합니다 -






  저는 보통 오전 6시부터 오후 12시까지 일하기 때문에, 새벽부터 오후 1시까지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일하면서 떡을 주워 먹는 경우가 잦은데, 항상 시간에 치이며 먹다 보니 삼키듯이 먹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그러나 식습관 교정의 필요성을 느낀 이후부터는 떡 하나를 일하는 내내 먹겠다는 기세로, 떡을 선택하고, 관찰하고, 향을 맡고, 입에 넣어서는 10번 이상을 씹었습니다. 또한, 1L짜리 물병을 갖다 두고 배가 고파올라 하면, 물을 마셨습니다.





  충분한 심적 여유를 가지고, 할 일이 많아도 그렇게 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예전보다 적게 먹었지만 늘 포만감을 느낄 수 있었고, 제가 선택한 음식들을 보다 세심하게 관찰한 후 음미하다 보니,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같은 음식이었지만,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니, 음식의 맛이 좋아지는 경험은 참 값진 것이었습니다.





"아 식사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이러한 노력을 하다 보니 식사에 대한 만족감과 자존감은 크게 올라갔고, 심지어 요리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전보다 적게 먹으니 지출도 줄어들었음과 더불어 배도 들어갔으니, 자신감 또한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회식자리에서 습관적으로 음식을 과하게 먹는 경향이 남아있지만 이 또한 차츰 고쳐보려고 합니다. 이왕 먹는 음식, 천천히 맛있게 먹어보는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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