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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작가 May 01. 2024

최선이라는 거짓말

#수필 10

  새벽 4시에 출근해서 오후 1시에 퇴근했습니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휴대폰 알림 창을 확인하니 어머니한테서 카톡이 하나 도착해 있습니다.



"울 망네? 미나리 어떻게 갔다줄까?"



  어느 때와 다름없는 어머니의 서툰 맞춤법에 잠깐 피식 웃었다가, 이내 심각해집니다. 저의 어머니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전투에 발을 담그셨습니다. 기본적인 맞춤법에서 어머니의 짧은 가방 끈이 드러날 때, 어릴 적에는 어머니가 마냥 부끄러웠습니다. 아무리 시골이었다고 해도, 초등교육을 받지 못한 어른을 거의 접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저는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와 20살이 될 때까지 한 집에서 살았으면서 어머니의 맞춤법을 교정해드리지 않고 저는 무얼 했을까요. 저는 언제나 위선자처럼 착한 사람 행세, 효녀 행세를 하고 있지만, 저 자신만은 제 본모습을 압니다. 어머니가 아직까지도 맞춤법을 교정하지 못한 이유는, 제가 신경 쓰기 싫어서 방관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날이 풀리는 날이면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동트기만을 기다리셨다가 때로는 설레어하며, 때로는 조급하게 현관문을 나섭니다. 봄철에 모습을 드러내는 고사리, 쑥, 미나리 따위를 끊으러 가기 위함입니다. 싱그러운 풀 따위들이 어머니 몰래 밤에 모습을 드러낼까 싶어서, 하루도 빠짐없이 산동산 전투를 치르러 가십니다. -산동산 전투는 제가 지어낸 단어입니다. 의지력 강한 어머니들이 새벽만 되면 풀 떼기를 독점하기 위해 산으로 출동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그렇게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산을 독점하여 어머니는 미나리를 한가득 따오셨습니다. 그리고는 가족 단톡방에 미나리를 한가득 땄다며 자랑하시는 어머니. 어머니의 카톡을 읽고, "나도 미나리 좋아혀"라는 짧은 답장 한 번에, 어머니는 바쁜 스케줄을 제쳐두고서 제게 미나리를 건네주러 오시겠답니다.





  운전을 시작하신 지 5년이 지나 가지만, 아직까지도 운전이 서툰 어머니는 자신이 가본 길 이외에는 섣불리 가려고 하지 않으십니다. 도로가 복잡하거나, 주차하기 힘들거나, 어두운 밤이면 운전하기를 꺼려하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가에서 30분 거리의 저희 집까지 직접 운전해서 온다고 하실 때마다 죄송하면서도 참 감사합니다.





  어머니는 온라인에서 구매한 버섯 통나무에서 자란 버섯 두 개와, 푸릇푸릇한 미나리를 뜨거운 물에 데쳐서 하나, 둘 정성스럽게 돌돌 말아 반찬통에 고이 넣은 것을 들고 오셨습니다. 어머니가 초인종을 누르기 직전, 지인의 전화를 받고 있었던 터라, 어머니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반찬 통을 열어젖히고서 "미나리 따갖고 하나, 하나 돌돌 말아서 갖고 왔어"라는, 내심 칭찬을 바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제때 답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전화를 끊었을 때는 이미 어머니가 반찬 뚜껑을 닫은 후였고, 먼 길 오신 어머니에게 제대로 된 반응도 못 해 드린 거 같아 죄송하면서도 속상했습니다. 어머니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전, 아버지의 건강 상태에 대한 얘기를 털어놓으셨습니다. 아버지가 허리디스크가 터진 상태인데도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하고 계신다고, 이번 연도 하반기에 수술을 들어가게 되면 큰돈이 들 것인데, 병원비를 비롯하여 생활비도 끊겨서 걱정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들은 직후, 아버지가 겪고 계신 고통에 대하여 생각했고, 두 번째로 어머니의 말씀에 선뜻 지원해 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은 저의 심리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누누이 외치고 다니던 '최선'을 정말 다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 생을 살아가는 이유는, 제가 사랑하고,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자신을 위해서라도 저는 늘 열심히 살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런데, 아버지 수술비에 돈을 보태주겠다는 말을 즉각적으로 하지 않은 저의 반응을 보며 내심 놀랐습니다. 뒤이어 분노했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제 계좌에 돈이 빠져나가는 것에 대해 거부 반응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평소 제가 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돌이켜보았더니, 저는 거부반응을 느껴서는 안 되었습니다. 평소에 돈을 그토록이나 가볍게 그리고 생각 없이 쓰면서 정작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쓰는 돈을 아까워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몇 안 되는 돈이라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불가피한 상황'에 처했을 때 기꺼이 내어주었어야 했습니다.





  저는 늘 이런 식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걱정한다고 하면서, 영양제를 한 번 사드린 게 다였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부모님의 건강이 걱정되었더라면 부모님에게 필요한 영양제 리스트를 작성하여 합리적인 제품을 물색한 후, 주기적으로 부모님에게 배송하고, 매일 잘 챙겨드시는지 확인했어야 했습니다. 정작 제 입에 들어가는 영양제는 그렇게나 꼼꼼하게 알아보고 구매하면서, 부모님에게는 그렇게 해드리지 못했던 제 모습에 화가 났습니다.





  심장 박동이 빨라오고, 눈시울이 붉어짐을 느낍니다. 부모님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전쟁을 치르고 계신지 너무도 잘 알고 있던 제가 자취를 시작하면서, 부모님의 고통을 잊고 호의호식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허리디스크와, 다리 장애로 인한 고통에 시달릴 때, 저는 먹고 싶으면 먹고, 사고 싶으면 사고, 놀고 싶으면 놀았습니다. 언제나 큰 사람이 되겠다고, 많은 돈을 벌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실상은 저축도 제대로 하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허황된 꿈에 사로잡힌 나날만을 반복했습니다.





 몇 개의 글을 쓰고, 주에 1-2권씩 책을 읽고, 주 6일 일을 하는 것만으로는 안되었습니다. 또 한 번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집으로 되돌아간 후, 소용돌이치는 내면의 태풍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점심에  먹은 음식들을  게워내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스스로를 향한 분노, 비난, 질책이 꼬리에 꼬리를 물아다,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기 위함이었습니다.




  "엄마, 아빠 집에 왔어?"


  "아니, 아빠 아직 퇴근 안 했어. 요즘 고기가 안 잡혀서 큰 일이네."


  "아아, 아까 전화했는데 안 받으시더라고. 엄마 나중에 아빠 병원비 내게 되면 저한테 꼭 말해줘요! 돈 보태줄게. 알겠죠?"


  "응~ 알겠어 우리 딸 고마워"


  "네 ㅎㅎ 미나리하고  버섯 갖다 줘서 고마워요. 삼겹살이랑 구워 먹을게!"




  저는 오늘 느낀 이 감정을 제 몸에 각인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과거에 반복했던 저의 선택이 '망각'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저는  기어코 이 부정적인 감정을 동력 삼아 제가 돈을 모으고 벌어야 하는 이유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기억할 것입니다.





  어머니와의 통화가 끝나고, 저는 휴대폰 앱인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지웠습니다. 뒤이어 신용카드를 해지했습니다. 다음 달에는 요가학원을 등록할 예정이었지만 이 또한 취소하려고 합니다. 그것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보다 중요하게 해야 할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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