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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 May 06. 2024

아름다운 별똥별이 지나고 남은, 칠흑같은 어둠

#수필 12

  무엇인가를 손에 꼭 움켜쥐던 때가 있었습니다. 막 태어났을 때는 친언니에게 분유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젖병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습니다. 조금 커서는 명절 때마다 친척들에게 받았던 몇 장의 초록 종이를 어머니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두 손으로 움켜쥐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집에 몇 없는 흰 양말 -어머니는 남에게 받아 온 양말을 모아두는 취미가 있었고, 구멍이 나도 꿰매어 신었기 때문에 양말 보관서랍이 비는 날이 없었습니다. 저는 알록달록하고 유치한 양말에 진절머리가 나서 제 돈으로 흰 양말을 사두고는 했습니다.-을 형제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집안 곳곳에 숨겨두었습니다.






  그것은 저만의 투쟁이자 방어였던 것입니다. 제가 그러한 비열한 움직임을 통해 얻어내고자 하였던 것은, 생존에 필요한 음식 따위였고, 타인들로부터 배척당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안정장치였습니다. 음식을 쟁취함으로써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흰 양말을 신음으로써 은근히 풍겨지는 가난과 도태의 냄새를 감추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제게는 생존을 위한 비열한 움직임이 살아가는 목표였다면, 성인이 되어서는 마땅히 추구해야 할 목표가 사라졌습니다. 길을 잃은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 물과, 흰 양말 따위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저 혼자만의 힘으로 상대적인 기본 욕구를 충족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선택해야 했습니다. 풍요를 추구할 것인지 -소유를 통한 만족감을 느끼는 길입니다.-, 행복을 추구할 것인지 -현재에 만족하는 법을 터득하고 주변 사람들과 불특정 다수에게 선의를 베풂으로써 기쁨을 느끼는 길입니다.-, 배움을 통한 성장을 추구할 것인지 -속세로부터 거리를 두고 오로지 저 자신에게 집중함으로써 성장하고 그를 통해 사회적 입지를 쌓는 길입니다.-를 말입니다.






  햇병아리와도 같았던 제가 가장 큰 끌림을 느꼈던 선택지는 당연, '풍요를 추구하는 길'이었습니다. 소유하고 싶었습니다. 타인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은 제가 이 세상에 살아야 할 이유를 없애버리는 것만 같은 공포를 안겨주었습니다. 그래서 필요 이상의 옷을 사고, 없어도 되는 물건을 구입했습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한 음식들을 찍기 위해 맛집들을 돌아다니고, 시간만 나면 놀러 다녔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남들이 다하는 '연애'를 따라 함으로써 심리적 우월감과 안정감을 느꼈고, 타인을 소유함으로써 내면의 결핍을 해소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풍요의 길을 추구하면, 언제나 깊고도 우울한 그림자가 동행한다는 것을 멀지 않아 깨달았습니다. 소유라는 만족감은 반짝하고 없어지는 별똥별과도 같았고, 별똥별이 지나가고 남은 깊고도 어두운 밤하늘은 저 자신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공허와 후회, 자기혐오라는 감정이었습니다. 때로는 풍요의 길을 추구하는 것이 삶의 진리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술과 담배,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가치관 공유는 그들에게 위로와 안정을 건네줍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러한 '효과적인 약'이 없었습니다. 저는 술과 담배를 입에도 대지 않을뿐더러 극 내향형 인간이기 때문에 소위 '무리'라는 것에 속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라는 인간은 소유가 주는 기쁨에 도취되는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무리 예쁘고, 리미티드 한 제품을 소유해도 그뿐일 뿐, 금방 예쁜 쓰레기로 둔갑시켜 버리는 특기가 있습니다. -아마도 넓은 인간관계를 구축하지 않고, SNS활동을 귀찮아하기 때문에 과시할 상황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게 있어서 소비는 불필요한 돈장난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의 길을 추구했습니다. 어릴 적 겪었던 불운한 사건의 연이은 발생으로 한참 우울한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에 허우적거릴 때, 자기 연민에 빠져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저 자신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소유의 무가치함을 깨닫고, 몇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존재'에 대한 감사와 환희를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글을 씀으로써 제 내면에 쌓인 감정의 응어리를 해석하고 풀어나가며, 증오를 용서로 전환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저는 가족, 친구, 직장동료들에게 진심 어린 관심과 사랑과 감사를 표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과거에는 느껴본 적 없었던 '잔잔한 호수'와도 같은 평안함이, 그리고 따뜻하게 피어오르는 내면의 훈훈한 행복감이 순식간에 제 한 몸을 안정시켜 주었습니다. "아 이것이야말로 내가 추구해야 하는 길이다."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막막하고, 무지하며, 우울하기만 했던 제 인생에 제가 추구해야 할 아주 맑고도 투명한 하나의 지표가 생겼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는 타인을 사랑할 줄만 알았지, 그들을 위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은 전혀 갖추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제게는 학력도, 돈도, 빽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이 상태로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플 때, 힘들 때, 도움이 필요할 때 지켜볼 수밖에 없는 비극이 펼쳐질 것이 불 보듯 뻔했습니다.







  그래서 '배움의 길을 추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더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실무 능력을 쌓다 보면 어두웠던 겨울에 봄이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악착같이 저축하고, 저축하는 과정 속에 지식을 축적하다 보면 '최선의 선택'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한 선택을 통하여 미래를 바꾸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온전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힘이 들겠지만, 이러한 삶의 방식이 제게 행복을 안겨준다면 저는 감사히 받아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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