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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 May 10. 2024

고요한 적막 속, 제습기 소음

#수필 14

  딱딱한 나무의자에 나름 도톰한 패턴 무늬의 담요를 얹고는 앉습니다. 이번 연도에 구매한 제품 중 가장 만족스러운 반원 1인 식탁-의자 세트이지만 제 엉덩이는 만족스럽지 않은가 봅니다. 의자에 기대어 앉아서 팔짱을 끼고는 정면을 응시합니다. 그리고 고개를 15도 정도 기울입니다. "오늘 하루는 무얼 하지?"




  일요일 새벽 5시 30분. 저는 다소 난잡하고 불쾌한 꿈을 꾸다가 생체리듬이 저의 단잠을 깨웁니다. 전날 자정이 다되어서 자는 바람에 오전 7시 30분에 기상 예정이었던 터이지만, 갑자기 정신이 맑아지는 기운에 따뜻하고 포근했던 이불을 걷어냅니다.





  다행입니다. 오늘 꾼 꿈은 '개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제 인생에 있어서 달갑지 않은 두 사람이 동시에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이불을 걷어낸 자리에 몽롱한 정신으로 앉아 주섬주섬 아이패드를 찾습니다. 경제 뉴스를 읽기 위함입니다. 경제 뉴스를 읽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경제 뉴스가 보여주는 통찰과 흐름에 감격스러울 따름입니다. "이 좋은 걸 조금만 더 빨리 보기 시작했더라면!" 그러나 괜찮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려운 용어나 현상을 전부 이해하며 읽지는 않습니다-





  오전 7시 20분 나무 의자에 앉아 가벼운 몽상에 빠집니다. "비가 추적추적 오니까, 파전 만들 재료를 사 와서 전을 부칠까" - "아냐 아냐, 언제 사러 갔다 오지? 무엇보다 집에 파전 냄새가 진동을 할 거야.", 몇 개월 상간으로 조회수와 구독수 상승에 비례하듯 살이 오른 유튜버가 떠오르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한 장면을 연상하다가 "감자칩을 하나 사 와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볼까?" - "아냐 아냐, 방금 침대에서 일어났는데 다시 침대에 들어가자고? 몸이 찌뿌둥하고 머리가 아파올 거야", "아 그러면 계속 미뤄왔던 책을 오늘 완독 하는 거야! 음.. 아니면 대충 옷을 걸치고 나가서 카페에 갔다가 비 오는 밖이나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도 좋겠다." - "아냐 아냐, 그러면 나의 저축이라는 큰 꿈에 지장이 생기는 걸. 불필요한 지출은 최대한 자제해야 해", "저번에 교보문고에서 봤던 1000 pcs 그림 너무 예뻤는데 사 올 걸 그랬다"라는 생각들을 아주 빠른 속도로 해내어 버립니다.






  끊임없는 자가문답을 하며, 어느 순간 지쳐버린 저는 벌떡 일어납니다. "아! 모르겠다. 일단 밥 먹고 생각하자!"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제 몸은 과연 알까요? 아무래도 이러한 고민들을 하면서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보니 제 몸은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 행복을 체감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오전 9시. 텅 빈 냉장고를 탈탈 털어서 밥 먹을 준비를 하는 중 전화가 울립니다. 제가 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전화입니다. 저는 일말의 고민 없이 오늘 달려가겠노라 답해드리고는 전화를 끊습니다. “마침 잘됐어. 해야 할 일이 생겼군. 본가에 가는 길에 책을 읽는 거야! “ 버스로 한 시간, 부모님을 뵈러 가는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흐리멍덩한 하늘에 울적했던 기분이 가라앉고, 마음 한편에 살랑살랑 거리는 가벼운 바람이, 불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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