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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 May 17. 2024

바람 앞에 등불

#수필 15



  궁금합니다. 당신이 제게 보인 관심이 진정 저를 향한 애정과 노파심인 것일까요. 당신의 삶을 제게 투영시킴으로써 대리 만족을 느끼기 위함인 것일까요.





  당신의 반복적이면서도 습관적인 간섭을 못 마땅히 여기 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신을 1년 동안 지켜본 바 때로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말과 행동들이 신뢰를 쌓기 어렵게 하였고 뒤에서 남몰래 저에 대한 험담과 거짓 소문을 만들어낸 장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단어와 문장, 공기의 울림, 호흡은 제 귀에 닿기 전 공기 중에 흩어져 버렸습니다. 제게 있어서 당신은 그런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비추어진 당신의 모습은 참 낯섭니다. 제가 근 6개월 동안 당신에게 보인 관심과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인 것일까요.





   일관적으로 강압적이고 신경질 적이며 저를 무시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최근 들어 당신의 간섭에서 묘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당신은 기질적으로 순종적이면서도 사람을 좋아하는 듯한데 그러한 대상이 무작위인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당신의 종달새 같은 지저귐에 귀를 기울이고 당신이 한 말을 기억해 주며, 당신을 사소하게 챙겨주고, 나아가 함께 웃어 주는 것만으로도 그 대상에 편입될 수 있는 듯합니다.







  실제로 저는 그리 했고 지금의 당신은 아마도 저를 좋아하는 듯합니다. 당신의 간섭이 애정을 담고 있든 당신의 이기적인 욕구를 반영하고 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오늘 이 글을 씀으로써 정리하고자 하였던 것은 당신이 제게 보였던 관심과 정이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는지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제게 막말을 하던 당신이 저의 팔짱을 끼며 인생에 대한 훈수를 늘어놓는 것이 싫지 않았습니다. 이는 저 또한 사람이라는 생물을 기질적으로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재 제가 타인에게 갖는 특별한 감정은 어쩌면 바람 앞에 등불은 아닐지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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