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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 May 31. 2024

종이 한 장 차이

#수필 17


  저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저 자신을, 제 가족을, 친구들을, 새로 알게 된 사람을 쉽게 좋아하고 또 깊이 사랑합니다. 돌이켜보면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저는 늘 주변 사람들을 관찰해 왔습니다.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고, 상대가 무심코 뱉은 말에 반영된 욕구와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어떤 요인이 상대의 정체성 형성에 작용한 것인지를 생각해보기도 하고, 상대의 무의식에 에고가 소리치고 있는 욕구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저는 '아무개'를 '아무개'로 보지 않고 복합체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 인간은 절대로 고유하지 않으며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 문화의 결과물이자 부모와 가정환경의 피조물입니다. 한 사람의 좋은 점과 나쁜 점 모두 주위 환경과 본인의 기질이 융화되며 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늘 누군가를 '좋은 사람', 또는 '나쁜 사람'으로 쉽게 단정 짓지 않으며 분류하지도 않습니다. '나쁜 상황'은 있어도 '나쁜 사람'은 없다는 것이 저만의 지론인듯합니다.





  한 때의 저는 참 괴로웠습니다. 경증 우울증이었던 때로 해석되던 그때에는 날이 좋은 날이면 그나마 제 컨디션이 괜찮은 날이었고 날이 좋지 않은 날이면 기분이 심연으로 가라앉을 때였습니다. 이제 막 성인이 되었던 저는 사회불안장애에 시달리며 온전한 친구 관계도 맺지 못했습니다.





  강박적인 자책과 본인 억압으로 제 스스로에게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였습니다. 공부를 하지 않은 날에는 "이렇게 몸만 쓰는 일만 하다 죽을 거야?"라고. 운동을 하지 않은 날이면 "두꺼워진 지방층을 봐. 이게 사람 몸이냐?"라고. 알바를 하지 않은 날이면 "지금 빈둥거릴 때가 아니잖아. 나는 비빌 구석이 없다고. 조금이라도 더 벌고 저축해야지."라고 스스로를 질책했습니다.





  그 누구의 현명한 조언도 없이 제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길을 향해 미련하고도 비효율적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고 채찍질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저 자신을 사랑하는 법도 몰랐고, 부모님을 용서하는 법도 몰랐으며, 인간관계의 중요성조차 깨닫지 못한 채 홀로 병들어 갔습니다.





  13시간의 알바를 끝내고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서 집으로 걸어오는 40분 동안은 영문 모를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가장 밝고도 맑아야 할 20대의 초반을 어둡고도 침울하게 보내고 나서 22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저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았던 거 같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무얼 좋아할까",



  "내가 힘든 이유가 뭐지?"



  "나는 무얼 두려워하고 있는가"




  뚜렷한 실체도 없이 저를 짓누르던 무형의 그림자를 하나 둘 규명하기 시작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서야 보였습니다. 제가 막연하게 기대하고 있던 부모님을 향한 기대치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이었는지를. 제 성장 배경에 '강인한 성인'이 되기 위해 갖추어져야 할 요인들 중 무엇이 누락되었는지, 부모님을 향한 분노와 원망이 나의 어떤 욕구를 반영하고 있는지,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면서도 값진 것인지를요.





  저는 저라는 사람을, 제 주변 사람들을, 주위 환경을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느끼던 부정적 감정이 환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저라는 존재가 얼마나 위대하고 존귀한 것인지를, 저를 사랑해 주고 제가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느꼈습니다.





  이후에 저의 내면은 아주 평온하고도 잔잔한 호수와도 같게 되었습니다. 불과 2년 전에 '에고'에 지배되어 습관적인 부정적 감정의 발현과 행동을 멈추고 매일을 새롭게 창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놀랍게도 종이 한 장 차이었습니다. 제가 내면의 평화를 이룩하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과 사랑을 전파하는 데는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지위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분석 - 자기 이해 - 자기 수용 - 행동 개선 - 목적 설정 등의 일련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한 때의 저는 개인적이고도 아주 큰 경험을 바탕으로 내면이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이를 불문하고 에고에 지배되어 습관적으로 부정적 상태에 노출된 사람들을 많이 접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또한 본인이 정말로 원할 때 꾀할 수 있으므로 섣부른 오지랖은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로,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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