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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 Jun 08. 2024

여유

#수필 8

제 삶에는 여유가 없었습니다. 늘 조급하고, 성급했던 이유를 저는 성격에서 찾았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제게는 언제나 여유가 없었고, 삶을 즐기는 방법을 도통 몰랐던 듯합니다.


여유란,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 또는 대범하고 너그럽게 일을 처리하는 마음의 상태.’라고 국어사전에 정의되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여유란,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저의 몸을 있는 그대로 감각하고, 움직임을 감각하며 상태를 감각하는 것.


공기의 온도를, 머리부터 발끝까지에서 전해지는 모든 감각을 느끼는 것.





생각해 보면 제게 있어서 ‘집안일’은 노동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었고, 최대한 빨리 끝내야만 하는 숙제와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청소하는 시간과 요리하는 시간을 즐기지 못했고 건너뛰기 십상이었습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모든 행위는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시간에 저는 과거와 미래에 존재했습니다. 집안일을 끝내고 빨리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특정 순간에 머물러있거나, 과거에 저를 불쾌하게 만들었던 시간들에 또다시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도 고통이었다면, 현재도 고통이 되었고, 미래는 늘 고통이었습니다. 미래란 무언가를 해내야만 하는 추상적인 공간이었고, 불완전하면서도 불안한 시간 개념이었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행복할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입니다.





다행인 점은,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냈다는 것입니다. 제가 현재를 희생하여 불안을 느끼고, 고통받음으로써 미래가 보장되고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다면, 저는 기꺼이 오늘을 희생하겠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온 바, 현재를 희생해서 미래를 이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현재를 온전히 감각하고, 제대로 활용했을 때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적은 많습니다.




‘현재를 희생’한다는 것의 의미는 얼마큼의 시간을 투입하여 미래에 변화를 꾀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저 미래를 미리 예견하여 불안을 느끼고 고통받는 감정의 희생을 말합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입니까. 부정적인 감정은 사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요즘의 저는, 제 요리를 먹고 맛있어할 사람들을 떠올리며 행복을 느낍니다.


요즘의 저는 청소한 후 깨끗해진 방안 상태를 보며 뿌듯함을 느끼고,


요즘의 저는 오늘 입은 옷을 손세탁하며 퍼지는 향긋한 세제 냄새에 온 신경을 집중합니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깨끗해질 수 있도록, 더 잘할 수 있도록 머리가 아파올 때나,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때 생계유지를 탁월하게 할 수 있는 쏠쏠한 정보를 주워 담습니다.




나중에 제가 보호해야 할 울타리가 더욱 넓어졌을 때 보다 든든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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