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16
많은 사람들에게 '성숙하다'라는 표현을 들어왔습니다. '어른스럽다', 또는 '성숙하다'라는 말들이 마치 꼬리표처럼 어릴 때부터 따라다녔던 거 같습니다. 어릴 때는 그러한 표현들이 마냥 좋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있는 활달함, 귀여움, 재능 등이 없었던 제게는 성숙하다는 말이 다른 능력들의 부재를 어느 정도 가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에도 제 주변에는 이상하리만치 또래들보다는 어른들이 모여들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성숙하다는 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눈치가 빨라 상대가 싫어할만한 행동을 일절 하지 않는 것이 성숙인가요, 저 자신에 대해 무지하여 저보다는 타인을 우선시했던 미련할 정도의 아티심과 희생정신이 성숙인가요.
확실한 것은 제게 있어서 타인을 위한 움직임이 결코 '이타적인 행동'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철저히 이기적였습니다. 저는 난처한 상황을 싫어하였고, 사람들이 저를 싫어할까 봐 늘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고, 상대가 싫어할만한 행동은 하지 않기 위해 세심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것들은 제 나름의 생존전략이었습니다.
20대 중반에 접어드는 나이임에도 5살에서 10살, 그 이상까지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편안하면서도 즐거운 것은 여전합니다. 오히려 또래 친구들과의 교류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제 나이 문화에서 도태되었다는 방증일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신경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저보다 6살 많은 언니인데, 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입니다. 제가 차분하고 어른스러우며 진중하다면, 그녀는 다소 천진난만하고 활달하며, 아이 같은 사람입니다.
어쩌면 그녀의 다급한 말투와 큰 리액션, 다양한 표정, 거리낌 없는 말들이 그녀를 더욱 아이 같아 보이도록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녀가 좋습니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면 잠시나마 중, 고등학교 때로 돌아가 근심, 걱정이 없어지는 착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즉흥적으로 생각난 것을 아무런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그녀에게 전달하여도 괜찮을 정도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여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녀와 대화할 때면 얼굴 위에 몇 겹이고 쌓아 올린 가면을 하나, 둘 벗고 있어도 되는 안전한 느낌이 듭니다. 그녀와 함께일 때는 머릿속을 가득 메운 계산적인 사고방식을 내려놓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어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