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편의상 연장자더라도 반말로 호칭하니(그들, 노인이라는 호칭) 양해 바랍니다.
내가 늙는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알게 된 건 한 봉사활동이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몇 주간의 봉사활동은 어느 조용한 양로원에서 이루어졌다.
처음 봉사를 하러 가던 날, 여름의 공기는 놀랍도록 조용했다.
오직 무더운 공기만이 우릴 반겼고,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벽돌로 뒤덮인 커다란 로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 뿐이었다. 게다가 그 사람마저도 로비를 두리번거리는 우리에게 조금의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무표정하게 자기 일을 계속할 뿐이어서 더욱 삭막했다. 벽돌은 조금 낡았는지 부서져 있었고 안은 깨끗했지만 뭐랄까, 조금 칙칙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우리를 보자, 한 남자가 그나마 밝은 표정과 목소리로 우리를 불렀다. 분명히 안은 환했고, 귀신이 나올 것처럼 다 쓰러져가거나 관리가 안 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칙칙하고 어딘가 갑갑한 느낌만큼은 도저히 가시질 않았다. 바깥과는 채도가 다른 듯한 곳이었다. 소리는 너무 조용해서 말을 조금이라도 크게 하면 온통 울려퍼질 것 같았다.
우리는 한 공간에 모여 조용히 앉아 있었다. 삭막한 분위기를 깨고 아까 우리를 부른 남자 사회복지사가 그 분위기에서는 최선의 열정으로 우리에게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다른 내용은 어디서나 들을 수 있던 평범한 내용이었다. 뛰지 말고, 옷 단정히 입고, 욕하거나 장난치지 말고, 예의바르게 행동하고.
그런데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전하던 '노인'에 대한 설명은 봉사황동이 끝난 다음에도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고 설명을 들은 당시에는 조금 머리가 혼잡해졌다.
'신체적 변화: 노인은 관절이 안 좋아지고, 거동이 불편해지며, 행동이 느려진다. 정서적 변화: 노인은 새로운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고, 자주 우울해한다. 외로움을 느끼며 기억력이 감소한다. 사회적 변화: 노인은 사회적 지위가 추락하고, 고립된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늙는다는 것에 장점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때 늙음이라는 것 죽음의 준비고, 한 인간의 쇠퇴라는 걸 온 몸으로 실감했다. 어릴 때 막연히 생각한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냥 나이가 들어서 늙은 것' 이라는 관념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었다. 나는 늙는 건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누구나 나이를 먹고, 누구나 늙는다. 안 죽는 인간이 없듯 안 늙는 인간도 없다. 모두가 내게 그렇게 말했고 나도 그렇다 생각했다.
나에게 늙음은 전혀 가까운 미래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먼 이야기에 가까웠다. 나는 언제나 늙은 사람을 아주 조금 배려해주는 입장이었다. 걸음이 불편하면 좀 기다려주고, 친척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좀 들어주는 정도에, 아주 작은 배려. 그건 사회 통념이기도 했지만 내가 늙는다는 걸 결국 남의 일로 생각했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왠지 그 때, 나는 저게 나의 미래라는 걸 확실히 실감했다. 오히려 감성적인 이야기가 아닌 이론적으로 접근하니 더 가슴에 와닿았다.
저건 내 이야기였다.
늙는 것은 장점이 전혀 없는, 한 젊은 인간이 노인으로 '추락'하는 과정처럼 보였다. 어떤 인간이라도 늙으면 사회적 지위를 내려놓아야 했다. 어떤 인간이라도 외로워지고, 누군가를 잃어야 한다.
나에게는 그게, 젊은 사람에게 결국 세상을 넘겨 주어야 한다는 비통한 현실로 다가왔다. 노화라는 건 결국 세대 교체의 과정인걸까. 젊은 사람에게는 그보다 반가운 소식이 없겠지만 노인에게는 시대의 뒷편으로 물러나라는 차가운 명령처럼 느껴지진 않을까.
인간의 말로는 결국, 젊은 시절을 내려놓고 외롭고 슬프고 고립된 처지로 죽어가는 걸까. 정말 저것이 우리 모두의 미래인가?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늙는다는 것이 두려워졌다.
봉사활동에서 나는 양로원에 있는 여러 어르신들을 만났다.
머리가 하얗게 새고, 얼굴과 몸, 손마저 주름으로 자글자글한 그들은 얼핏 보면 모두 비슷한 얼굴로 보였다. 쳐지고, 어딘가 힘 없는 얼굴. 아무리 목소리 크고 밝은 어르신이라도 그것만은 같았다. 모든 노인들은 가장 힘 없는 젊은이보다도 더 힘이 없었다.
그리고 나를 보는 그들의 따뜻한 눈과 "예쁘다"는 말은, 내 외모나 성격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그저 젊음에 대한 부러움처럼 느껴졌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저 젊기 때문에 그것만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
거기서 만난 또다른 사회복지사는 유독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가장 앞에 있던 나는 귀가 아플 정도였다. 배에서부터 꾹꾹 눌러 힘껏 내지르는 목소리, 정말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잘 들릴 정도로 크고 선명했지만 어르신들은 그 말을 몇 번이고 되물었다. 나는 그 분들을 도와 그림을 그리고 화분을 심는 활동을 했는데, 대부분 설명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해 몇 번이고 똑같은 설명을 반복해야 했고 '지구'를 그리라는 간단한 활동조차 한참이 걸렸다. 심지어는 지퍼백을 열을 힘마저 없어 내가 계속 열어주었던 분도 계셨다.
그 때, 나는 내 앞에 앉은 할머니를 보았다. 그 옆에 있는, 그 뒤에 있는, 그 앞에 있는 수많은 노인들을 보았다.
봉사활동을 진행하는 지하의 빈 공간을 지나가며 본 식당에 있던 힘없는 눈으로 TV를 응시하던 수많은 노인들을 떠올렸다.
어째서인지 그들의 얼굴이 선명히 눈에 들어오고, 다른 생각이 퍼뜩 내 머리를 스쳐가서는 계속 사라지지 않았다.
'저들에게도 20대가 있었을까?'
저들에게도 젊은 시절과 어린 시절이 있었겠지, 라는 생각은 점차 저 사람들도 젊었었다고? 에서 저 사람들이 진짜 한 때는 젊은이였다고? 라는 불신으로 번져갔다.
그들의 얼굴에서 전혀 젊음의 생기를 찾을 수 없었다. 그 양로원이 엄청나게 시설이 좋은 곳은 아니었다는 걸 감안해도 그들은 항상 표정이 없었고, 대화도 잘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들이, 정말 한 때는 힘차게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일했단 말인가.
당연한 사실이 전혀 믿기지가 않았다. 그들은 처음부터 노인이었을 것 같았다. 그들의 젊은 얼굴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저렇게 태어난 것처럼 그려지지 않았다.
의문만 머리를 뱅뱅 돌았다. 정말로? 그들이 유아 시절을 지나 어린 시절을 지나고 청춘을 보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마주 하는 '노인'이 된거라고?
그곳에 있던 모든 노인들은 외로움을 공유했다.
서로 외로움을 보듬기도 하는 것 같았고, 그들의 곁에는 목소리 큰 사회복지사가 항상 힘차게 그들을 격려하고 맞이해주었다.
나는 그들이 왜 그렇게 목소리가 큰지 알고 있다. 그들이 원래부터 목소리가 컸던 게 아니라는 것도 안다.
두번째 날, 나는 할머니들에게 매니큐어를 발라주고 팩을 하는 봉사활동을 했다.
첫번째보다 더 그들을 자세히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 때는 도시에 몸담았던 사람이라도 지금은 조용한 이곳에서 문화와는 동떨어진 삶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매니큐어가 뭔지도 몰랐고, 심지어는 핸드크림마저 잘 쓰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당장 그곳에 있던 내 일행들 중 몇 명은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는 건 한참 넘어 아예 손톱에 보석을 붙이고 그림을 그리는 네일아트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였는데, 핸드크림은 기본이고 온갖 옷과 스타일링 도구로 자신을 한껏 치장하고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살아 온 세월은 같은 인간을 전혀 다른 종족처럼 보이게 했다.
그들을 안마하며, 나는 그들의 피부가 정말 주름이 많고, 얇고, 유분기 하나 없다는 걸 직접 깨달았다.
죄송스런 마음이지만 7살 때의 나는 그리 착한 손녀는 아니었어서,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안마해준 적은 거의 없었다.
손을 잡은 게 다였다.
그들은 어깨에도 힘 하나 없었고, 어떤 할머니의 얼굴엔 모공이 얼굴에 자잘한 구멍이 뚫린 듯 열려 있었다.
어떤 할머니는 갑자기 일어나서 노래를 하기도 했다.
어떤 할머니는 갑자기 잠들고, 일어나서는 핸드크림을 로션처럼 치덕치덕 발라댔다.
어떤 할머니는 말을 거의 듣지 못해 수화로 대화를 해야 하나 고민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들은 내 큰 키를 부러워했다.
내가 정말 길쭉해서 좋겠다고 말했다.
어떤 할머니는 아예, 나에게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너무 당황해서 "스마트폰이 없다."는 되도 않는 거짓말을 했지만 계속해 요구해와서, 결국 사회복지사와 함께 정중히 거절했다.
노인들은 종종 나를 아주 당황하게 했다.
그건 양로원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외할머니는 매번 떠들어댄다.
정말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지겹다는 생각이 들도록 반복한다.
잘 걷지도 못하는 지금도 입만은 참 건강하시다.
친할아버지는 나를 늘 성으로 부르신다.
평상시에는 방에서 잘 나오지도 않고, 잘 대화하지도 않는다.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그저 아빠가 전해준 이야기밖에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내 기억 속에서도, 늘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는 생각 뿐이다.
친할머니는 늘 나를 좋아하셨다.
나는 어릴때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게 그렇게 기특했나보다.
내가 아직도 책을 많이 읽는 똑똑한 아이라고 생각하신다.
그리고 늘 나보고 늘씬해서 예쁘다고 하신다.
늘 나에게 많은 용돈을 주셨고, 나는 할머니에게 뭔가를 해드린 적이 없음에도 늘 나를 좋아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더이상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지 못해서
나에 대한 이미지가 똑똑하고 늘씬한 아이로 굳어져서
앞으로 영영 바뀌지 않게 될 것 같다.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는 걸 넘어서, 점점 있던 정보도 잊어가고 있어 두렵다.
유일한 예외는 외할아버지였다.
나를 놀라게 하지는 않았다.
늘 조용히 정원에서 강아지를 껴안고 바깥에 있었고, 늘 말이 많지는 않으셨다.
늘 점잖았고 어린 나를 놀라게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는 꽤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할아버지가 쓰러지던 날,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누군가 병원에 실려갔다는 사실에 크나큰 충격을 받기엔, 나는 뇌출혈이 무얼 의미하는지 몰랐다.
나는 금방 일어날거라고 당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많이는 아니지만, 이미 어느정도 나이 들어 있었고 모두가 알고 있었다.
내 나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아직 가까운 이의 죽음에 깊이 슬퍼하기엔 조금 어렸다.
내가 만난 모든 노인들은
늘 외로워했다.
사람이 많던 적던 상관 없었다.
그 사람들은 결국 혼자였다.
사람이 죽을 때는 혼자서 가듯, 거기에 익숙해지라고 떠밀기라도 하듯, 언제나 그들은 결국 혼자가 되었다.
나는 어릴 적에는 솔직히 노인을 좋아하지 않았다.
쭈글쭈글한데다 어딘가 말이 통하지 않아서, 내 눈에는 조금 무섭게 비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나는 알고 있다.
그들도 한 때는 젊었던 사람들이었다는 걸.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었단 걸. 그들은 결국 나보다 조금 더 오래 산 사람일 뿐이라는 걸.
그리고 그들도 늙고 싶어서 늙은 것이 아니고, 그 외로움에도 익숙해질리 없다는 걸.
나는 친척들과 자주 왕래하지 않는다.
설날과 추석 빼고는 거의 가지 않는 것 같다.
아빠와 엄마는 종종 본가에 연락하기도 하지만, 나는 내가 사는 이 집이 본가다.
연락할 곳도, 수단도, 이유도 없다.
그래서일까.
설날과 추석에 하루동안만 얼굴을 볼 때면 어느 순간부터 미안해졌다.
내가 떠나면, 또 혼자가 되는걸까.
내가 떠나면, 이 집안은 얼마나 적막할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왜 인간이 늙음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왜 인간은 자연사마저도 아프게 가야 하는걸까.
늙으면 이곳저곳 아프고, 결국 잘 걷지도 못하게 되던데.
다 잊어버리게 되던데.
인생에서 가장 추할지도 모르는 모습으로, 쓸쓸하게 가는데.
늙는 것에 장점은 하나도 없다.
늙으면 그 때부터는 가치 있는 한 인간이 아니라, 부양해야 할 약자가 된다.
노인 복지가 활성화되고, 노인 일자리가 많아지고, 노약자석이 존재한다는 건 결국 그들은 사회적 약자라는 걸 뜻한다.
장애인, 임산부, 환자 등에 대한 복지와는 다르다.
장애인이나 임산부, 환자가 되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젠가 꼭 노인이 된다.
아무리 우리가 지금 당장은 약자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반드시 약자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어떤 인간이 자신이 더이상 존중받는 것이 배려받는 것에 만족하고 기뻐하겠는가.
더이상 존엄하지 않게 된다 느끼지 않겠는가.
자신이 더이상 사회의 일원이 아니게 될 동안, 누군가 자신 대신 일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지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다.
그들 모두가 한 때는 젊었고, 어리고 예쁜 시절을 겪었다는 것이 나를 더 슬프게 한다.
왜 인간의 젊음은 그토록 짧고 한 순간인걸까.
인간이 가장 인간일 수 있는 건 그때이지 않은가?
늙는다는 건 세대가 교체되고, 나는 밀려나는 것.
오롯이 혼자서 이겨내야 하는 것.
그 순간부터 인생에서 가장 약한 몸을 이끌고 아픔과 슬픔과 싸워야 하는 것.
나는 시간이 흐르는 게 너무나 두려워진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그들에게 '늙을 바에는 죽는 게 낫지 않느냐' 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
예의가 아니라면 그것도 맞지만.
그보다도 자식의 손을 잡고 걷는 그 순간, 누군가와 함께 늙어가며 평생을 지켜본다는 게
그들의 눈에 그리 나쁜 것 같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끝없이 불행하다.
젊을 적에도 불행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젊은 적에도 행복을 찾았듯
늙으면 아주 작은 행복을 고이 간직했다 두고두고 꺼내거나, 아주 작은 행복을 누구보다 먼저 찾아서 품에 꼭꼭 담아둘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