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증이 다시 찾아오고 말았다.
나의 무기력증은 배달 음식에서 시작된다. 뭔가 귀찮은 날, 괜히 사치를 부리고 싶은 날 침대에 누워 배달앱을 뒤진다. 그리고 약간의 사치를 부려 혼자서는 다 먹지 못할 양의 음식을 시킨다.( 요즘엔 최소 배달 금액 채우려면 그래야 한다.) 음식을 먹으며 볼 프로그램을 열심히 골라본다. 그리고 음식이 오면 잠시 기분이 좋아진다. 나를 위한 투자라고 정신 승리를 하며 배달 음식을 먹는 즐거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다 먹지 못하고 남은 음식들과 빨갛게 물든 새하얀 플라스틱 통들이 보인다. 이미 틀어놓은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그것들을 무시한다. 끝나고 나서야 천천히 일어나 정리를 한다.(정리를 하지 않고 다른 영상을 틀 때도 있다. 그건 더 최악이다.) 열심히 정리를 한 후에도 더부룩한 배는 꺼질 생각이 없다. 그렇다고 운동을 할 의욕도 없다. (여기에서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나가면 좋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렇게 다시 침대로 가거나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러다가 밤이 찾아오고 밤에는 또 잡생각을 하느라 잠에 들지 못하고 늦잠을 자고 소화는 잘 되지 않고 몸은 피곤한 무기력증이 시작된다.
무기력증의 극복은 환기에서 시작된다. 아침에 잠에서 깼을 때 다시 잠에 들 수도 있지만 괜히 창문을 한번 열어본다. (운이 좋으면 하늘이 맑고 운이 나쁘면 흐리다. 그래도 닫힌 창문보다는 열린 창문을 보는 것이 낫다.) 매연이든 맑은 공기든 뭐든 집 안의 공기와는 다소 다른 공기가 콧속에 들어온다. 그리고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본다. (신나는 노래든 슬픈 노래든 상관없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면 된다.) 백수에게 일찍 기상한 날은 뭔가 공짜로 시간을 번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아무 종이에 오늘 할 일을 적어본다. 엄청 사소하고 작은 일도 적어본다 (예를 들어 침대 정리하기, 청소기 돌리기, 강아지 산책하기와 같은 일도 괜찮다. 그냥 놀고 싶은 날에는 놀기라고 적는다.) 그리고 그것들을 해본다. 해야 할 일에 맞춰 괜히 노래 장르도 바꿔서 틀어본다. 그리고 마음이 내킨다면 조금 부지런을 떨어 밖에도 나가본다. 나가서 편의점에도 들러보고 다이소에도 들러본다. 여건이 된다면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매해보기도 한다.(다이소에는 새로운 취미를 시작할 수 있는 다양한 물건들이 있다. 그리고 저렴해서 좋다.) 집에 도착했을 때 땀이 나거나 찝찝한 기분이 들면 더욱 좋다. 그럼 씻으러 화장실에 간다. 뽀송한 기분으로 휴식을 취하거나 새로 산 물건들을 열어본다. 엄청나게 알찬 하루는 아니지만 적어도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이 될 거다.
모든 게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그게 참 어렵다. 마음을 먹으려면 57가지의 걱정거리와 32번의 부담감과 21번의 우울한 상상을 이겨내야 한다.
그래서 그냥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괜히 창문을 열고 환기를 했다.
오늘은 운이 좋게 하늘이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