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셨다.
나는 책을 좋아했다. 운이 좋게도 궁전 안에 커다란 도서관이 있어 나는 언제든 원하는 책을 빌려 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는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밥을 먹을 때 식탁 위에 책을 올려놓고 책을 읽으며 밥을 먹기도 했다.(지금은 스마트폰이 책을 대신하고 있지만) 궁전에서 책이 가장 잘 읽히는 곳은 바로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에 가기 전에 책을 7~10권 정도 골라 문 앞에 쌓아놓고 읽기도 했다.(다행히 변비에 걸리지는 않았다.) 엄마와 아빠에게 책을 그만 읽고 자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을 보면 어릴 적 나는 꽤 다독을 하는 어린이였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 걱정이 사라져서 좋았다. 내일 선생님이 발표를 시킨다고 하는데 내 이름을 부르시면 어떡하지, 내일 짝꿍을 바꾸는 날인데 아무도 나와 짝을 하지 않으려고 하면 어떡하지 와 같은 걱정들이 지구를 멸망시키려 하는 악당들을 물리치거나 전 세계의 어린이들이 악몽을 꾸지 않게 하려고 거인과 싸우는 그런 이야기들을 읽으면 후 하고 불면 날아가는 먼지처럼 가벼워졌다. 이야기는 나를 긴장시키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울게 하고 미소를 짓게 했다.
지금도 나는 책을 좋아한다.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책의 표지를 보고 책의 내용을 유추하며 내 취향에 맞는 책을 고르고 사는 것을 좋아한다. 방 한편에 마련한 작은 공간에 내가 산 책을 꽂아 놓고 지하철을 타고 먼 곳에 가야 할 때 읽고 싶은 책을 골라 가방에 넣는 것을 좋아한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책을 잘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을 좋아하고 가까이하고 있지만 정작 읽지는 못한다. 지하철에서 읽으려고 챙겨간 책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서있느라 꺼내지도 못하고 서점에서 종이 띠를 둘러 포장해 준 책은 책꽂이 안에서 나와 펼쳐보지도 못했다. 어렸을 때는 잠에 들기 전 책을 펼치면 책 속 이야기에 풍덩 빠져들었는데 이젠 잠에 풍덩 빠져버리고 만다. 예전에는 책이 그렇게 재미있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 스스로가 궁금해진다.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신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책을 보기 시작했다. 나도 괜히 마음이 들떠 서점에 갔다. 한강 작가님의 책을 사려다가 품절이라는 안내문을 보고 방향을 돌렸다. 서점을 구경하다가 아동 문학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들여다보다 내가 어릴 적 좋아했던 로알드 달 작가님의 마틸다 책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 고민하다가 책을 꺼냈다. 그리고 책을 샀다.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을 내가 직접 구매한 것은 처음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빨리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