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중요성
‘우리끼리 무슨 말이 더 필요해?’
‘말 안 해도 알지?’
안지 오래된, 또는 충분한 친밀도가 형성된 사이에서 종종 주고받는 말이다. 말 안 해도 무슨 말인지 잘 아는,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내 맘이 어떤지 잘 아는 잘 통하는 상대와 하는 말. 오늘은 ‘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나이 삼십이 넘어서고부터 오래된 지인들에게서 부쩍 ‘군말’이 사라졌다. 알짜배기 할 말만 하고 그게 아니면 짧은 대화만 주고받게 되면서 말 많고 생각 많은 나는 대화할 사람을 모조리 잃어버린 것만 같아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느끼곤 했다. 어릴 적엔, 아니 불과 몇 년 전인 이십 대 때만 해도 실컷 수다 떨고 공감도 잘해주던 친구들이 공감보다는 사실 전달만을, 소소한 일상보단 큰 이슈가 있을 때만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는 대화할 상대가 절실하게 필요했고 대화를 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한 갈망과 외로움이 나날이 커졌다. 삼십 대가 되면 원래 이런 걸까 하는 생각에 자주 빠지다 어느 순간부턴 이 사실이 익숙해져서 더 이상 서운하지도, 기대하지도 않게 되었다. ‘어차피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말은 글로 쓰기 시작했다.
대화가 점점 사라진 이유엔 ‘말하지 않아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의 영향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 ‘우리 정도 사이’면 굳이 부연 설명하지 않아도, 구구절절 말하고 공감해 주지 않아도 알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점점 군말이 사라지는 것이다. 실제로 서비스직을 하는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하루에 수십 명의 사람과 말을 주고받아야 하는데,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말하는 것을 귀찮아 한단 걸 많이 느낀다. ‘말 안 해도 알겠지.’라는 생각이 습관이 되어 매사 말하기 귀찮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기에 말 안 하면 알 수가 없다. 먹고살기 바쁘기에, 겉으로만 보면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이나 행동 모두를 세세하게 알아채긴 어렵다. 특히나 ‘고마움’이나 ‘미안함’이나 ‘서운함’의 감정은 입 밖으로 내지 않는 한 상대가 알 길이 없고, 그냥 넘어가면 곪기 쉽다. 상대방이 이만큼의 배려나 노력을 해줬을 때, ‘굳이 말 안 해도 고마운지 알겠지.’ 하고 넘기는 것, 상대방이 나로 인해 감정이 상하거나 조금의 피해를 입었을 때, ‘굳이 말 안 해도 미안한지 알겠지. 미안하니 다음에 더 잘해줘야겠다.’라고 생각하는지는 말로 내뱉지 않는 이상 상대방은 죽었다 깨도 모른다. 상대방 때문에 서운한데, ‘굳이 말 안 해도 서운한지 알겠지.’ 하면 상대방은 내가 서운한지도 모르고 반복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뭐가 됐든 ‘말 안 해도 알겠지.’라는 생각을 할수록 겉으론 평온하고 견고해 보이던 관계가 사실은 툭 치면 쉽게 무너져버릴 모래성처럼 곪고 곪은 관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안 하던 말로 표현하자니 괜히 낯부끄럽고 귀찮고 어려울 수 있다. ‘내가 이런 말 꺼내서 낯간지러운 분위기가 되거나 더 어색해지거나 괜히 싸우면 어떡하지? 그냥 내가 참고 넘기는 게 편한데.’라는 생각을 하기 쉽지만 막상 뱉어보면 그리 어려운 말이 아니었음을, 반짝이는 눈과 함께 고마워하는 상대방의 표정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아껴왔던 말들을 내뱉어보는 건 어떨까?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