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아프게 사랑하고 싶어
밝은 성격의 내가 유독 연애에서만은 오랫동안 수동적이고 방어적이었던 이유는,
한번 마음의 문을 열면 너무 좋아해 버리는 걸 알기에, 내게서 사랑이 너무 커지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사랑은 늘 어렵다. 마음껏 사랑하고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온도차에 아프게 될, 혼자 끙끙 앓게 될 걸 알기에 또다시 활짝 열었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닫곤 한다.
어쩌면 내 사랑의 반만 사랑해 보기로 하는 게 나뿐만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 너무 크면 상대의 사소한 말투, 행동 하나하나가 더 큰 파장이 되어 닿는다. 때론 상대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르게 왜곡된 채로 닿아버린다. 사랑이 큰 만큼 쉽게 서운해진다. 상대는 절대 나와 같을 수 없기에, 내 입맛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없다. 머리론 아는데 어김없이 속상하다. 매번 티 내고 싶지 않다.
나만 서운함을 숨기지 못하는 걸까. 분명 상대도 서운한 순간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티 하나 나지 않는 걸까. 나는 그릇이 정말 작은 사람일까? 왜 작은 것에 기분이 나빴다 좋았다 하는 걸까? 사랑을 하면 생각이 너무 많아진다. 문제다, 문제!
나는 애매모호하고 불확실한 게 싫다. 나를 보여주는 만큼 상대를 알고 싶다. 내가 물어야만 알 수 있는 사랑은 안갯속에 갇힌 섬 같다. 아는 만큼 믿을 수 있기에, 내가 모르는 시간이, 사람이 있는 사람을 온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상대가 예측 가능한 선 안에 존재할 때 안정감을 느끼고 신뢰하곤 했다. 반면에 예상을 매번 빗겨나는 사람은 신뢰하기 어렵다.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한 사랑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단 걸 깨달았다. 다 알아야 속이 후련하고 사랑하는 만큼 다 보여줘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 알지 않아도 상대를 믿을 수 있고, 사랑의 크기와 표현의 크기가 다른 사람이 있다. 보이지 않는 노력도 빙산의 일각처럼 그 아래에 훨씬 더 큰 빙하가 있을 수 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작은 파동에도 요동치지 않는 잔잔하고 드넓은 강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은 마치 고양이와 강아지 같다. 사랑하지만 다 표현하긴 어렵고, 표현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줬으면 하는, 내게 어느 정도 거리를 지켜줬으면 하는 고양이의 사랑과 '난 당신뿐이야. 당신을 위해서라면 내 전부를 줄 수 있어.' 하고 외치는 강아지의 사랑. 나는 고양이인 척했던 강아지였나 보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기 위해선 사랑에만 꽂혀있던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단 걸 깨달았다. 사물이 너무 가까이 있으면 초점을 제대로 잡기 어렵듯이, 사랑도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야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나는 너무 딱 붙어 내 시선대로만 상대를 보려 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이쪽도, 저쪽도 보면서 가끔 사랑도 들여다봐야겠다. 그럼 내가 바라던 대로 느린 걸음으로 오래도록 따뜻한 사랑을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