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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03. 2023

너를 놓아준다

너란 존재의 과다증식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꿈을 꾼다. 내 연인이 다른 이성을 바라보고 있는 꿈. 마냥 좋다가도 그런 꿈을 꾸는 날이면 몇 날 며칠 신경이 쓰여 지옥 속에서 나날들을 보낸다. 꿈은 꿈일 뿐이라고 떨쳐내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그런 꿈의 여파는 제법 오랫동안 날 괴롭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또다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연인과 이성의 꿈.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사랑엔 문제가 없다. 그는 의심할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고, 우린 서로 안정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전에 만난 어떤 사람과 비교해 보아도 마음이 따뜻하고 자상한 사람이다. 나는 잊을만하면 찾아와 나를 괴롭히는 이 꿈에 대해 들여다보기로 했다.


 ‘아뿔싸!’

 꿈속의 연인은 지금 내 연인의 얼굴이 아니었다. 오래전 이별 후, 내가 아주 오래도록 그리워했던, 세월과 함께 마음속에서 함께 자라 온 그 사람의 얼굴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물론 지금의 연인을 만나기 전까지 수도 없이 그리워했던 건 사실이지만 이제 더 이상 그가 그립지 않다고,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내 무의식 속에 남아 가장 행복한 순간마다 꿈속에 찾아와 날 괴롭히고 있었다니.


 가만 생각해 보니 그는 그렇게 두고두고 떠올리고 그리워할 만큼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다. 내게 가장 잘해준 사람도 아니고, 가장 좋은 사람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시절 속앓이를 많이 해서 밉기도 하다. 그가 아주 많이 떠올랐던 건, 다른 지난 이별들과 달리 헤어지고도 그를 자연스레 흘려보내지 못하고 내 안에 가두면서 그의 존재가 나도 모르게 ‘과다증식’ 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이젠 내 안에 그를 보내주려 한다. 다시 한번 되새긴다. 그는 그리 큰 존재가 아니다. 두고두고 떠올릴 만큼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내가 만든 ‘커다란 허상’ 일뿐. 지금의 연인이 누구보다 소중하고 나는 그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 더 이상 현재의 연애에 그의 자욱을 남기지 않기 위해 그의 이름도, 기억도, 남아있던 마지막 흔적조차 깨끗이, 아주 오래전 헤어진 그날과 함께 보내주려 한다.


 ‘안녕, 잘 가. 다신 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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