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Aug 17. 2023

그놈의 오지랖


 자주 오는 단골 할아버지 손님이 있다. 메뉴는 늘 같다. ‘따뜻한 카페라테 연하게.’ 일주일에 몇 번 아침 운동을 하고 오는 길에 잠시 들러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다 가신다. 자녀들은 모두 손녀 손주를 보고 할아버지는 남은 여생을 운동과 커피 한잔으로 보내시곤 한다. 방문이 뜸하시면 건강이 걱정되고 다시 자주 오시면 반갑고 그런 단골손님이다.


 나는 자주 오는 손님들의 커피와 취향과 기타 사항을 파악했다 안부를 건네기도 하며 소소한 친밀을 다지곤 한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는 언젠가 “학생(삼십 대지만 할아버지 눈엔 학생으로 보이는 게 틀림없다.)이 해주는 커피가 제일 맛있어.”라는 극찬을 해주고 가셨다. 커피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찬사이기에 그 후로 할아버지가 오시면 더 신경을 써서 커피를 내리곤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 할아버지가 첫 손님으로 오셨다. 커피를 정성스럽게 내려 건네드리자 할아버지는 내게 학교는 졸업했냐고 물으셨다. 지난번에 삼십 대라 말씀드렸지만 기억하실 리가 없기에 졸업한 지는 꽤 됐고 카페 일을 오래 하고 있다고 간단하게 답했다. 그러자 돌아온 할아버지의 말이 오랫동안 내 안을 뒤집고 있다.


 “카페 해서 뭐 하게. 전공 살려야 성공하지.”


 나는 안다. 그 시대 어르신들에겐 저런 잔소리가 관심이란 걸. 그 시대에는 전공을 살리면, 성실하면, 노력하면 되는 시대였으니깐. 알면서도 참 속상하다. 노후를 시간을 때우면서 보내는 대다수의 노인들이 가장 자주 찾는 카페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의 면전에다 대고  그 직업을 하대하는 말을 하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모든 사람이 전공 살려서 살면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카페나 밥집은 누가 차리며, 그렇게 좋아하시는 친절한 미소와 기분 좋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을까?


 누군가는 이런 일을 하고, 누군가는 저런 일을 하며 사회가 돌아간다. 내가 매일 대하는 누군가는 그 일에 진심이고, 어떤 일이라도 그 자리가 비게 되면 우리의 삶은 조금씩 불편해진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불필요한 관심 말고, 정말 필요한 관심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생각과 내 살아온 방식과, 다른 사람의 그것은 다를 수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후로도 수많은 손님들이 오갔다. 손님 중에 많은 분들은 내 친절함과 미소를 좋아하신다. 대부분 무표정으로 들어왔다가 내 미소를 보고 같이 웃으며 나간다. 단골손님이 되면 “저 또 왔어요.” 하고 나는 “또 오셨네요.” 하고 살갑게 맞이한다. 나는 늘 같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일을 한다. 나를 찾는 몇몇 분들이 있음에 이 일에 보람을 느낀다. 누군가는 그렇게 나를 찾으면서도 마음 한켠에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을 아래로 여기기도 할 수 있단 생각에 속이 상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택한 일인 걸. 다만 바란다.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고 불필요한 오지랖보단 필요한 관심을 나누는 세상이 되길.


 선선한 바람이 분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함께 향긋한 풀내음이 퍼진다. 지독하게 더웠던 여름이 슬슬 가을에게 자리를 내어주려 하고 있다. 솔솔 부는 바람을 가르며 분주하게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을 창밖으로 바라보다 또 한 번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서 오세요.” 어김없이 미소 짓는다. 내 미소가 누군가의 지친 하루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면, 그걸로 됐다.










이전 08화 노인과 키오스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