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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13. 2023

노인과 키오스크


 어느 날 점주님은 가게에 키오스크를 들이셨다. 노인이 절대다수인 이 동네에 키오스크를 설치한들 거들떠나 보겠냐는 의견이었지만 몇 달이 지난 지금, 점주님이 들인 키오스크는 우리 가게에 없어선 안될 일등 공신이 되었다. 직접 얼굴 보고 인사하며 주문을 받으면 참 좋겠지만 인건비, 물류비, 공공요금 등 어느 하나 오르지 않은 게 없다. 그중 가장 비싼 인건비의 몫을 키오스크가 톡톡히 해주고 있다. 사람 한 명 대신 등장한 키오스크는 오픈부터 마감까지 지치지 않고 주문을 받는다. 요즘 새로 생기는 매장에 가보면 키오스크 없는 곳을 찾기가 힘들다. 노인인구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은 앞으로 동네에서 커피 한잔 주문 하기도 어렵겠단 생각이 들었다.


 키오스크를 들이자 처음엔 중년이상의 손님들은 무조건 할 줄 모른다며 직접 주문을 받아달라 했다. 하지만 점주님은 바쁜 와중에도, 막상 해보면 어렵지 않다며 키오스크 사용법을 한 명 한 명 알려드렸다. 나도 그런 점주님을 따라 틈날 때마다 어르신들께 사용법을 알려드렸다. 가르쳐드려도 귀찮다며 툴툴대거나 그냥 카운터에서 직접 해달라고 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단골로 오는 어르신들은 덕분에 어딜 가도 키오스크로 주문할 수 있는 스마트한 어르신이 되었다.


 ‘아유, 어려워서 한참 걸렸네.’ 하고 성가시다며 툴툴거리셔도 ‘그래도 해내셨네요! 정말 잘하셨는데요?’ 하고 칭찬해 드렸다. 다음번부턴 어려운 주문도 척척 잘 해내시길래 ‘이제 정말 잘하시는데요?’ 했더니, ‘이 정도는 이제 다 할 줄 알지!’ 하고 우쭐대셨다. 뿌듯하기도 하고 귀여우셨다. 어르신도 어르신 나름이란 생각이 들었다. ‘에이, 어르신들이 이걸 하겠어?’ 하고 당연히 못할 거란 편견을 가졌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모든 어르신들이 배움을 거부하려는 건 아닐 텐데, 어쩌면 젊은이들이 가르쳐주길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을 수 있겠단 생각에 죄송스럽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어떤 글을 보았다. 햄버거 가게 키오스크 앞에서 한참을 끙끙거리다 결국 빈손으로 돌아와 펑펑 울던 엄마를 보고 속이 상해 딸이 올린 사연이었다. 사연 속 엄마가 우리 가족이 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현대 문명은 급격한 속도로 편리해지고 있지만 그에 따른 명(明)과 암(暗)도 분명해졌다. 빠르게 적응한 사람은 혜택을 모두 누릴 수 있지만 적응하지 못한 사람은 기본적인 혜택도 누리지 못하게 된다. 안 그래도 심한 세대 간의 분리가 더욱더 심해지는 건 시간문제다. 이젠 배움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배우지 않으면 도태되기 쉽다.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면 스마트한 ’어른’이 되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날로그만 고수하면 도태된 ‘노인‘이 될 수 있다.


 대가족 시대였던 예전엔 집안의 노인이 가장 영향력 있었고 ‘노인공경’을 당연시했지만 핵가족화가 되고 개인을 더 중시하면서 지금은 ‘지혜로운 노인‘만을 공경하는 시대가 되었다. 배우려는 의지 없이 나이‘만’ 든 어른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고령화시대로 가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모두가 함께 잘 지내기 위해선 젊은이는 ‘가르쳐주려는 의지’가, 노인은 ‘배우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조금 귀찮아도 한번 더 알려주려는 의지, 조금 귀찮아도 한번 해보려는 의지, 우리 모두에게 ‘의지’가 필요한 요즘이다. 언젠가 모두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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