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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17. 2023

명품과 사치품

 가성비(價性比)

 가격 대비 성능을 일컫는 말이다.


 나는 항상 가성비를 따져왔다. 일찍부터 자취하면서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어 쓰다 보니 생활이 우선이고 남는 금액에서 갖고 싶은 것을 사야 했는데, 생활하기도 빠듯하다 보니 갖고 싶은 건 항상 ‘저렴하고 좋은 것’으로 샀다. 자연스레 비싼 것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유행하고 너도 나도 다 하고 다니는 것엔 관심이 없었다. 한철 유행하는 것에 큰돈을 쓰는 게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런 것보단 비싸지 않으면서 나에게 어울리는 것을 찾았다. 튼튼하고 오래 쓸 수 있을 법한데 가격도 괜찮은 것을 찾기 위해 늘 고객후기를 눈이 빠지도록 찾았다. 후기가 없는 것엔 관심 가지지 않았다. 덜컥 샀다가 별로이면 낭비이기 때문이다. 하나를 사려면 몇 달을 고민하다 샀다. 그래서 하나를 사면 굉장히 오래 쓰는 편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 나이에 이런 지지리 궁상이 있나 싶을 수 있지만 이 생활이 익숙해진 터라 과연 돈이 넉넉해진다고 내가 덜컥 비싼 걸 살 수나 있을까 싶다.


 카페에서 일하다 보면 다양한 연령층을 관람(?)할 수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명품’이라 불리는 것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연령대가 아주 많이 낮아진 걸 볼 수 있었다. 몇백 하는 가방을 아주 어린 친구들이 메고 다니는 걸 보면 진품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십 대 이십 대가 사기에 과분한 고가의 가방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십 대들에게 영향력이 아주 큰 아이돌들이 명품 엠베서더로 활동하는 일이 아주 흔하다.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닌데, 아이돌을 동경하면서 아이돌이 입은 제품들을 따라 사고 싶어 한다. 명품을 사고 싶어 안달나하는 연령대가 낮아지고, 길에서도 흔히 보이다 보니 ‘나도 명품 하나쯤 있어야 하나.’ 하는 조바심이 들기 쉬운 요즘이다.


 요즘은 가품시장도 성황이라고 한다. 명품과 정말 비슷한 가품만을 취급하는 사이트들이 있고 가품조차도 가격이 꽤 된다. 명품과 똑같이 카피하기 위해 공을 들였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가품을 사서라도 명품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들의 니즈를 완벽히 파악한 것이다. 나는 명품에, 가품에, 유행에 목마른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갖고 싶은 게 진정 ‘명품(名品)’인지 ‘허영심’인지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우리가 흔히 ‘명품’이라고 부르는 것은 영어로 ‘luxury'이다. 그런데 'luxury'의 뜻은 아이러니하게도 명품이 아닌 ‘사치(품)’이다. ‘사치’는 ‘필요 이상의 돈이나 물건을 쓰거나 분수에 지나친 생활을 하는 것’이다. 곱씹어보면 우리가 관심 갖고 조바심 내던 것들은 사치임을 알 수 있다.


 내 어릴 적엔 부자와 빈자가 크게 티 나지 않았다. 진짜 부자는 자신의 부를 크게 티 내려고 하지 않았고 나머지는 다 고만고만했기 때문이다. 달리 보면 내가 크게 사치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치에 관심 없는 내 눈에조차도 사치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보이는 걸 보면 예전과 지금이 아주 많이 다르다는 건 알 수 있다. 요즘은 티를 내는 세상이다. 다녀온 곳을 SNS에 자랑하거나 가진 비싼 것들을 과시하거나 한 끼에 삼십만 원씩 하는 오마카세 먹는 것을 자랑하는 시대이다. 너도나도 자랑하기 바쁘니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기 위해 넉넉하지 않아도 한번 따라 해 보는 경험을 값지게 생각하는 게 요즘의 추세이다.


 무엇을 하든 내가 값지게 느끼고 행복하고 깨달음을 얻는다면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 후에 따라오는 것이 빈 지갑과 허탈함 그리고 또 다른 허영심이라면 과연 그게 ‘나’를, ‘나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황새를 따라 해도 뱁새는 뱁새다. 가랑이가 찢어진 당신, 지금 행복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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