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구 주택을 전전하며 혼자 산지 10년 차. 제법 예민해졌고 혼자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주관도 뚜렷해졌다. 이 동네 저 동네 살다 보니 동네 분위기에 따라 이웃의 분위기도 달라진단 걸 알게 되었고, 언젠간 내가 사는 도시에서 가장 좋은 구로 이사 가서 터를 잡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글을 쓰기 시작하고 저소득 청년이 되니 운이 좋게 청년전세임대주택에 당첨이 되었고, 내 집은 아니지만 감사하게도 원하던 구에 입성하게 되었다.
직전에 잠시 머물렀던 동네는 노인이 많은 가난한 동네였다. 집을 구하던 때가 이사철이었던 탓에 동네마다 괜찮은 매물이 남아있지 않았고, 비싼 세에 비해 썩 좋지 않았던 그 집에서의 나날은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해가 들지 않아 늘 습했던 북향집, 연탄불을 피워 한차례 소동이 있었던 옆집, 가난의 그림자를 드리운 채 절뚝이며 걸어가는 검은 얼굴의 노인들, 곳곳에 즐비해 있는 요양병원, ‘임대’라 적힌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불 꺼진 가게들. 그 동네를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들이다. 사시사철 어둡고 칙칙한 동네였다.
내가 출근하는 카페는 그 집에서 꽤 먼 곳이었음에도 마찬가지로 노인들이 많았다. 노인이 많다는 점 말고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는데, 길을 걸으면 어디든 팔다리에 현란한 문신을 휘어감은 사람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뿌연 담배연기를 뿜어댔다. 시비라도 걸리는 날엔 큰일이 날 것 같은 험상궂게 생긴 양아치들이 참 많았다. 한 마디로 노인 아니면 양아치가 대부분인 동네였다. 집에 있든 일터에 있든 온 환경이 나를 괴롭혔다. ‘이 동네에 왜 살고 있지?’, ‘이런 동네에서 일을 왜 하는 거야?’ 하는 마음의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밝고 활기찬 나를 지키기가 어려웠다. 그날그날 오는 손님에 따라 기분이 오락가락했다. 가난한 검은 얼굴과 껄렁대는 검은 그림들 사이에서 나는 새하얀 이방인 같았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가난한 동네에서 벗어나던 날 나는 쾌재를 외쳤다. 더 이상 그 가난하고 칙칙한 동네의 분위기에 압도되지 않을 수 있단 사실만으로 너무 행복했다. 이사한 곳은 직전의 동네와 내가 일하는 동네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입이 떡 하고 벌어지는 높이의 고층 아파트가 즐비해 있었고, 직장인이 정말 많은 동네였다. 흠이라면 출퇴근시간마다 가득 찬 만원 버스에서 튕겨나듯 내려야 한단 것이었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생기만으로도 모처럼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사는 곳에도 기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잠시 살았던 가난한 그 동네엔 못이 하나 있었다. 조선 중엽에 채 씨 성을 가진 판서가 살던 집터였는데, 그곳이 장차 임금이 태어날 명당이라는 말에 그곳에 집을 짓지 못하도록 못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설이 있다. 그렇게 임금이 태어나지 못하게 막아버림과 함께 동네의 기운이 다 해버린 게 아닐까 하는 혼자만의 우스운 생각을 해본다. 그곳에서 지내며 우울했던 탓에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다시 돌아가라 하면 단칼에 거절하고 싶을 정도로 희망이 없던 시절이었다.
출근길이면 높은 빌딩과 분주한 도시를 지나 오래된 건물, 배달 오토바이, 느릿느릿 걸어가는 노인 말고는 인적이 드문 동네에 도착한다. 버스에 올라타는 사람도 싹 물갈이가 된다. 단정하고 말끔한 차림의 젊은 사람이 승객의 대부분이었다가, 제 몸 가누기도 힘들어 보이는데 자기보다 커다란 짐을 이고 느릿느릿 올라타는 노인들로 가득 찬다. 이 기묘한 광경을 매일 관찰하며 동네가 주는 분위기, 기운에 대해 종종 생각하곤 한다. 건강한 정신의 온전한 나를 지킨다는 것은 스스로를 불안한 환경에 빠뜨리지 않고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는 것도 포함된다. 제아무리 무쇠 같은 사람이라도 매일 보는 것, 대하는 사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숨’. ‘사람이나 동물이 코 또는 입으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기운’이란 뜻이다. 이 자체로 거창한 뜻은 아니지만 어떤 수식어가 붙냐에 따라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숨이 ‘막히다’, 숨을 ‘고다’, 숨을 ‘끊다 ‘, 숨을 ‘돌리다’ 등 ‘생(生)이냐 사(死)냐’가 달린 단어이다. 값비싸고 멋진 식물도 그늘지고 퍼석한 곳에선 제대로 자랄 수 없다. 우리도 다를 게 없다. 나를 옥죄고 숨이 막히는 곳에 있다면, 우리 이제 볕이 들고 비옥한 곳으로 가서
‘숨을 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