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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29. 2022

놀이터가 없는 아이들

 어릴 땐 학교 가는 게 낙이었다. 형제가 없던 나는 친구들이 잔뜩 있는 학교가 좋았다. 방과 후면 흙장난을 치고 속이 메스꺼울 때까지 그네를 타고, 널뛰기, 철봉 놀이, 술래잡기 등을 하며 놀았다. 놀이터는 해가 질 때까지 신나게 놀아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는 천국이었다. 문방구에서 슬러쉬를 사 먹고, 학교 앞 떡볶이집에서 컵 떡볶이를 먹고, 봉봉(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지만 우리 지역에선 봉봉이라 불렀다.)에서 뛰놀다 학원도 빼먹다 혼나기도 했다. 우리 시절은 그랬다. 넘치는 에너지를 풀 놀이터가 충분했다. 자라는 시기에 맘껏 뛰놀고 입시 과정을 거쳐 대학생이 되었고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늘 작업하러 오는 시내의 어느 카페 옆엔 실내 디스코 팡팡이 있다. 어릴 때 놀이공원에서 타본 적이 있지만 허리도 아프고 구경하는 사람이 많아 부끄럽기도 해서 잘 타진 않았던 놀이기구이다. 어느 순간부터 도심에 디스코 팡팡이 생기면서 10대 초반 친구들의 놀이터가 된 듯했다. 나는 그 나이대의 어린 동생이나 조카가 없어서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작업하러 이곳에 올 때마다, 그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고 거친 욕설을 내뱉는 소란스러운 아이들을 종종 마주치다 보니 방황하는 불량한 10대들이 즐기는 놀이시설 인가 싶다.


 그날도 자주 가는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카페가 울리도록 부르짖는 소리가 바깥에서 나길래 깜짝 놀라 유리창 너머를 보았다. 10대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놀고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바닥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휴대폰을 만지며 침을 뱉거나 이성친구끼리 껴안고 있기도 했다. 시내 한가운데, 각종 카페들이 늘어서 있는 이곳이 어느새 방황하는 아이들의 아지터가 된 듯하다. 근처 다른 가게 주인도 걱정이 되는 듯 창 밖을 주시한다. 학교와는 거리가 먼 시내 한복판이 어쩌다 이들의 놀이터가 된 것일까?


 내가 어릴 땐 아이가 놀이터에서 노는 것이 당연했다. 주말이면 몇 시에 어디 놀이터에서 보기로 약속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같은 아파트 주민이 아니면 놀이터에서 같이 놀지도 못한다고 한다. 아파트도 급이 매겨져 있다. 빌라에는 놀이터도 없다. 놀 곳이 없는 아이들은 시내로 나오고 길바닥 아무 곳에나 앉고 침을 뱉고 담배를 피우며 논다. 이를 제지해줄 어른은 없다. 문득 일본 사회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거론되는 '토요코 키즈'가 생각난다. 토요코 키즈란 일본 가부키초의 토호 시네마즈 옆 광장 근처에서 노숙을 하거나 거리를 배회하는 가출 청소년을 일컫는 말이다. 대부분의 토요코 키즈는 이혼 가정, 한부모 가정, 재혼 가정, 아동 학대, 가정폭력 등의 불행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 거리를 배회하며 무리 지어 생활하다 보니 범죄에 노출되기 쉽다. 실제로 일본 토요코 키즈들을 타깃으로 한 성매매, 마약 범죄가 종종 이루어지기 때문에 카페 밖에서 무리 지어 고성방가를 하며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자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이들은 해가 지고 밤늦도록 길바닥에 앉아 자릴 떠나지 않았다.


 분명 십수 년 전에 비해 모든 것이 편리해지고 성장했지만 사회문제는 날로 심해지고 있다. 아이는 놀이터에서 맘껏 뛰노는 게 당연하지만 요즘은 당연한 게 당연한 게 아니다. 학원가에는 밤 10시가 되면 수업을 마친 아이들을 기다리는 학부모들의 차로 교통이 혼잡해진다. 자기 몸통보다 큰 책가방을 짊어진 지친 표정의 아이들과 길 한가운데 모여 앉아 소릴 지르며 놀던 아이들의 모습은 대비되면서도 표정은 크게 다르지 않단 생각이 든다. 마음껏 뛰놀고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 할 아이들에게서 삶에 지친 어른의 표정이 보인다.


 일하기 바쁘고, 쉬는 날은 피로를 풀기 바쁘다. 어느새 우린 쫓기듯이 앞만 향해 달리고 있다. 무엇을 향해 가는지도 모르고 남들과 비교하며,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가끔 외곽으로 놀러 가 자연 속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쉬면 '행복하다', '살 것 같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행복은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기만 해도 어디에나 존재하는데, 우린 너무나 멀리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어른들의 어리석은 달리기 현장에 아이들을 억지로 구겨 넣은 것만 같아 미안하고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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