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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30. 2022

하늘나라에 쓰는 편지


  작은 아빠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안부 여쭙네요. 여기는 요즘 참 덥습니다. 매년 겪으면서도 대구의 여름은 참 견디기 힘듭니다. 다이어트한답시고 무척 쏘다니는데 이젠 낮엔 너무 더워서 밖을 못 다닐 정도예요. 듣기로 사촌은 사촌오빠와 함께 서울에서 지낸다고 합니다. 하던 일은 관두고 다른 공부를 하고 있나 봅니다. 저는 알바도 하고 글을 쓰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작은 아빠 소식도 한 번씩 궁금한데 들을 수가 없네요. 오늘은 제가 듣는 수필 수업에서 가족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가족의 죽음에 대한 부분에서 저는 작은 아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 가장 가까운 가족을 잃은 첫 경험이었으니까요. 이 글이 하늘나라에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아빠에 대한 글을 꼭 써보고 싶었습니다.


  5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지만 장남인 저희 아빠의 리더십 부족으로 작은 아빠는 장남의 역할을 대신 톡톡히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번도 경제적으로 자리 잡아본 적 없는 아빠를 미워하는 저에게 "너희 아빠 너무 미워하지 마라."라고 하셨죠. 저를 보면 항상 용돈을 두둑이 챙겨주셨습니다. 다른 조카들보다 애틋하게 대해주셨죠. 저희 아빠는 사촌들에게 넉넉하게 용돈을 챙겨준 적도 없는데, 그게 항상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장남인 아빠가 못한 효도도 참 많이 하셨습니다. 쉬는 날이 일정치 않은 운수업을 하면서 힘들게 번 돈으로 부모님을 챙기시고 가족 행사도 누구보다 빠지지 않고 참여하셨죠. 그에 반해 저희 아빠는 행사도 자주 빠지고 할머니, 할아버지께 도움만 받고 해 드린 것이 없습니다.


  어느새 가족들은 작은 아빠를 '큰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아빠가 큰 아빠인데도 역할을 하지 않으니 당연했죠. 가족 모임에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도 항상 작은 아빠였습니다. 아빠는 항상 큰 방에서 TV를 보거나 낮잠을 자고, 때 되면 작은 엄마들이 힘들게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할머니 댁을 청소하고 집안일을 신경 쓰는 것도 모두 작은 아빠들의 몫이었죠. 그런데도 아빠는 장남인데 더 챙겨주지 않는다며 철없는 소리를 합니다. 아빠가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3년 전 태풍과 함께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가을의 늦은 밤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트럭에 천막을 치던 중 바람에 날려 그만 사고를 당하셨죠. 작은 아빠가 중환자실에 계실 때만 해도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금방 깨어나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저 잠시, 그동안 고생한 육신을 쉬게 하시는 거라고, 한 숨 푹 자고 일어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뒤늦게 중환자실에 면회 간 날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합니다. 누워계신 동안 살이 모조리 빠져서 가죽만 남아버린 작은 아빠의 모습은 아직 살아계신 할아버지와 너무나 닮아있었습니다. 수십 개의 바늘이 꽂혀 퉁퉁 부어있던 작은 아빠의 빳빳한 손을 부여잡고 기도했습니다. 꼭 깨어나시라고, 그때까지 사촌을 제가 잘 보살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끝내 작은 아빠는 남아있는 가족들의 간절한 염원에도 홀로 떠나셨습니다. 하늘은 야속하게도 좋은 사람을 너무 빨리 데려가는 것 같습니다.


  장례 절차를 모두 지켜본 것이 처음이었고, 그 대상이 작은 아빠였기 때문에 더더욱 힘든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7개월 동안 작은 아빠 댁에서 학교를 다니던 대학 시절이 떠오릅니다. 작은 아빠는 직업상 쉬는 날이 일정치 않았습니다. 밤새 전국 곳곳을 운전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셨습니다. 그나마 쉬는 날엔 안방 침대에 지친 몸을 뉘이고 하루 종일 TV를 보고 배가 고프면 거실로 홀로 나와 식사를 하곤 하셨습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온종일 고된 노동을 하고 쉬는 날이면 그저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낙이라는 것을 나이가 더 들고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고단한 나날들을 가족을 생각하며 버티셨을 겁니다. 운동은커녕 가벼운 취미생활도 없이 일만 하고 달려오신 작은 아빠의 몸은 나날이 앙상해져 갔습니다. 작은 아빠는 노래를 좋아하고 흥이 많으셨다 들었습니다. 이렇게 가실 줄 알았더라면 좋아하던 기타를 잡고 노래도 부르면서 조금 더 삶을 즐기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종종 생각하곤 합니다.


  작은 아빠의 혼이 떠나고 남은 육신을 마지막으로 뜨거운 불구덩이로 보내 이별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잘 견뎌오던 사촌은 "안돼. 아빠 너무 뜨겁잖아."라며 울부짖었습니다. 다른 사촌들과 저는 사촌의 손을 꼭 잡고 소리 죽여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은 아빠 몫만큼 사촌을 챙기겠다고 한번 더 다짐했습니다.


  사촌의 마음은 굳게 닫힌 듯했습니다. 많이 물어보고 보듬어주고 싶었지만 그 슬픔과 고통이 어느 정돈지 상상할 수 없었기에 더 조심스러웠습니다. 사촌이 드디어 취업하고 오랜만에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사촌을 정말 많이 사랑해주는 남자 친구가 생겼습니다. 어둡고 주눅 든 사촌을 대가 없이 사랑해주는 고마운 사람인 듯하여 안도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작은 아빠가 세상에 남기고 간 선물이라 생각했습니다. 며칠 뒤 사촌과 함께 추억의 장소에 놀러 가기로 했습니다. 약속한 당일 자정이 되도록 아무 연락이 없어 약속이 파투 났다 생각했습니다. 사촌은 그 전에도 종종 연락이 안 되곤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주 6일을 근무하고 하루를 쉬다 보니 고돼서 그날 푹 쉬었습니다. 그리고 사촌에게 연락이 안 되어 약속이 파투 났다고 생각했으며 다음엔 꼭 미리 연락해달라며 다음에 언제 볼 지를 묻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사촌은 답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사촌과 연락하지 않은 지 어느새 2년이 지났습니다. 제 마음속엔 항상 짐이 있습니다. 작은 아빠께 제가 드린 약속을 못 지키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항상 찝찝합니다. 사촌을 챙겨야 하지만 저를 미워한다 생각하여 차마 연락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항상 사촌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형제가 없기에 사촌을 제 형제라 생각하고 지냈습니다. 하지만 사촌에겐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습니다. 그 벽을 허물어보려고 참 많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사촌은 벽을 쌓으면서도 그 벽을 허물어줄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부모님께 받은 상처와 어려움을 가지고 살다 보니 제 한 몸 가누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더는 그 벽을 두드리지 못했습니다. 매일 미안해하고 용서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작은 아빠께서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사촌이 필요로 하는 때가 있다면 언제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는 제 마음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촌이 어떻게 지내는지 참 궁금합니다. 가끔 할머니와 통화를 해서 소식을 듣습니다만 한땐 그 어떤 친구보다 더 가까웠던 시절이 있었는데 참 아쉽습니다. 언젠가 용기 내어 사촌에게 안부를 물을 생각입니다. 자주 놀러 갈 때마다 환한 미소로 맞이해 주시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언제나 마음속에 작은 아빠를 담아두고 있습니다. 문득 생각이 나면 마음이 아려옵니다.


  낮엔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덥더니 오후부터 바람이 세차게 불고 구름이 가득 꼈네요. 이렇게 비가 올 듯한 날이면 참 많이 그립습니다. 누워계신 동안 얼마나 굳게 닫힌 입을 때고 싶으셨을까요. 사랑한다 말할 수도,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없는 소중한 자식과 아내를 두고 갑자기 떠난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그 마음을 생각하면 그저 하염없이 눈물이 납니다. 그래도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일상으로 돌아가서 살아가야겠지요. 아직도 문득 생각날 때면 많이 힘들지만 우리 모두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작은 아빠, 그립고 그립습니다. 그곳에선 부디 생에서 못다 누린 것들 맘껏 누리며 편히 지내세요. 사랑합니다.


2022년 05월 30일


당신이 그립고 그리운 어느 여름밤.

조카 김 작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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