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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13. 2022

아무튼 스페셜 떡볶이

 그날따라 떡볶이가 무척이나 먹고 싶었다. 배달로 시키자니 혼자 먹기에 너무 많아 1인분만 파는 떡볶이집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퇴근길, 지도에 떡볶이집을 검색해서 갔는데 가는 집마다 '내부 수리 중', '정기 휴무' 등의 이유로 문이 닫혀 있었다. 네 번째 떡볶이집까지 문이 닫혀있기에 '오늘 무슨 날인가' 하며 돌아서려는 순간, 'ㅇㅇ김밥'이라 적혀있는 허름한 김밥집이 보였다. 다행히 메뉴판에 떡볶이가 있었다. 허름한 시장 안에 있는 손님 한 명 없는 김밥집이었지만 이미 온 동네를 돌아다니느라 지칠 대로 지쳤기에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스페셜 떡볶이를 주문하고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허름한 김밥집은 '윙' 하는 파리 소리만 났다. 뒤늦게 퍽 걱정이 되었다. 조금만 신선도가 떨어져도 탈이 쉽게 나는 몸인지라 음식 맛은 차치하더라도 싱싱한 재료를 쓸까 의문이 들어 불안해하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께서 말을 거셨다.


 "야채 좋아해요?"


 사실 떡볶이에 떡보다 야채를 더 좋아하기에 곧바로 "네! 정말 좋아해요!"를 외쳤더니 아주머니는 훈훈하게 웃으셨다. 그제야 주인의 얼굴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듯한 푸근하고 친근한 인상의 아주머니였다.


 "요즘 젊은 사람들 야채를 안 좋아해서 물어봤어요. 많이 넣어드릴게."



 그리곤 냉장고 여는 소리, 칼질 소리 몇 번이 들리더니 순식간에 떡볶이가 뚝딱뚝딱 완성되었다. 꼬마 만두 듬뿍에 삶은 계란 하나를 빼고는 뭐가 스페셜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스페셜 떡볶이'가 나왔다. 첫맛은 별 맛이 안나 실망스러웠는데, 먹다 보니 묘하게 자꾸 당겼다. '소식좌'가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주변에서 알 사람은 알만한 어마어마한 소식좌인 내가 그날만은 꽤나 포식했다.


 떡볶이를 먹는 동안 시장 속 조용한 김밥집에 손님이 하나둘씩 꾸준히 들어오고 나갔다. '딸랑' 소리와 함께 한 할아버지가 들어왔고, 무심하게 '김밥 두 줄'을 외쳤다. 할아버지는 '전에 참치는 맛없더라. 느끼해.'라고 했다. 자기가 만든 음식을 면전에서 맛없다고 하는 게 기분 나쁠 법도 한데 주인은 그런 내색도 없이 '아유, 참치김밥도 느끼하면 치즈김밥도 느끼할 테고, 그럼 뭘 드셔야 하지?' 했다.


 "치즈로 줘."

 "치즈 안 느끼하겠어요? 참치도 느끼해하셨는데."

 "한번 먹어보지. 뭐."


 주인은 뚝딱뚝딱 치즈김밥을 말았다. 들어보니 할아버지는 얼마 전 암에 걸려 방사선 치료 중이었다. 아마도 이 김밥집의 오랜 단골인 것 같았다. 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입맛을 잃은 할아버지에게 주인아주머니는 맞춤형 김밥을 만들어 건네주었다. 할아버지는 김밥이 든 검은 봉지를 흔들며 시장 밖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이어서 오는 손님들과도 몇 번의 대화를 나누고는 주인은 맞춤형 김밥을 말아주었다. 손님의 입맛과 병력을 알기에 그에 맞는 메뉴를 추천하고 만들어주는 신기한 김밥집이었다. 대화 없이 똑같은 레시피로 나가는 요즘 김밥집과 달리 손님 맞춤형 일대일 서비스였다.


 음악소리도 TV 소리도 없는 시장 속 조용하고 허름한 김밥집에서 나는 그 어디서도 느끼기 어려웠던 온기를 느꼈다. 대단한 맛도 익숙한 맛도 아닌데 묘하게 구미가 당기던 '아무튼 스페셜 떡볶이'가 정이 그리워지는 날이면 한 번씩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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