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Dec 01. 2022

우리, 잠시 떨어져 있자

 해 질 녘의 분홍빛으로 물드는 하늘을 나는 참 좋아한다. 하루 중 삼십 분이 채 되지 않는 찰나의 시간이지만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이 시간의 공기와 아련함이 좋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오롯이 만끽하기 위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시야가 탁 트인 곳으로 간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서글픔이 서린 길고 긴 까만 밤이 시작된다. 나는 어쩌면 그 삼십 분 남짓의 짧은 순간을 보기 위해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릴 때 피아노곡을 찾아 듣는 것을 좋아했다.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새벽 세네시에 일어나 헤드폰을 쓰고 슈베르트의 곡을 피아노로 녹음한 테이프를 혼자 듣곤 했다. 눈을 감고 곡의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는 그의 생애, 그의 시대에 도착해 있었다. 벅차오르는 깊은 감정의 파도를 만끽하던 때의 카타르시스와 그 후의 여운은 떠올리기만 했을 뿐인데도 아직도 가슴에 잔잔히 울려 퍼진다.


 혼자 있는 시간엔 온 감각이 깨어난다. 내가 예민하고 섬세해진 것은 혼자 생활을 오래 하고부터였다. 외롭기도 하지만 이 외로움이 싫지 않다. 인간은 저마다의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 상실의 외로움, 관계의 외로움, 내면의 외로움 등 우린 다양한 외로움을 느낀다. 나는 해 질 녘의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차가워진 공기를 피부로 느낄 때,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 차오르는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종종 느낀다. 인간은 몹시 나약해서 함께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존재지만 인간은 몹시 나약해서, 어쩔 수 없는 혼자인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때론 함께 있어도 외로운가 보다.


 가까워 보이던 모든 것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틈이 있다. 바싹 붙어있기만 한 것은 없다. 외롭고 나약한 우리에게도 틈이 필요하다. 매일 붙어있는 연인 또는 가족보다 가끔 보는 이들의 관계가 더욱 안정적여 보일 때도 있다. 항상 함께하면서도 화목해 보이는 이들이라 할 지라도 내내 함께 붙어있진 않을 것이다. 안정적인 관계는 틈을 인정하고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니 가끔은, 혼자 견뎌야 하는 외로움의 시간을 두려워 말기로 하자. 그 외로움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을 때야 말로 스스로, 그리고 함께 완전해질 수 있다. 그러니 우리,


잠시 떨어져 있자.






 

작가의 이전글 나는 독해져야만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