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구석김작가 Nov 24. 2022

나는 독해져야만 했다

 오늘은 내 안에 증오에 대한 얘기를 꺼내볼까 한다. 오늘은 매주 듣던 수필 수업의 종강 기념으로 교수님과 수강생들이 다 같이 식사를 했다. 대부분이 최소 가정이 있는 연령대인 데다 한자리했던 정년퇴직 공직자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이야기는 옛 시절의 부정부패, 비리 이야기로 흘러갔다. 삼십 대 초반인 나는 모르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으므로 최대한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 중이었다. 그러다 한분이 건강보험료를 보면 재산을 알 수 있다고 자기보다 보험료를 더 내는 사람을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어디에 집 몇 채, 어디에 상가 몇 채, 어디에 땅을 가지고 있단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교수님께 건강보험료를 얼마나 내냐 물었고, 교수님은 오십만 원을 낸다고 하셨다. 교수님께 물어봤던 수강생은 그렇다면 자산이 최소 이십억대라며 자기보다 더 많이 내는 사람을 자기 주변에선 처음 봤다고 놀라워했다. 나는 곧바로 집에 있는 아빠가 떠올랐다.


 통장 자산 0원. 그나마 있는 자산도 전부 코인에 투자한 바람에 코인 하락장과 함께 모든 자산이 휴지조각이 된, 그러나 다른 일은 절대 하지 않는 고집과 고지식함, 매일을 집에 있으면서 운동할 때만 잠시 외출하는, 삼시 세끼를 집에서 챙겨 먹는 아빠 덕에 나는 쉬는 날이라도 집에서 잠시도 조용히 보낼 수가 없게 되었다. 사회활동을 하지 않는 무기력한 부모님을 매일 집에서 마주하는 기분을 아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 보니 내 속은 멍들어간다. 그런 아빠와 한집에 있으면 나까지 무기력해지는 기분이 들어 잠만 자고 집을 빠져나온 지 몇 달 째다. 나도 쉬는 날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을 좋아하고 식재료를 사 와서 맛있는 음식을 해 먹는 걸 좋아했지만 이 집에선 더 이상 요리도 하지 않는다. 한번 요리를 하면 삼시 세끼 집에서 밥을 먹는 아빠는 내 몫은 남겨놓지 않고 다 먹어치워 버린다. 행여 간식이라도 사 오는 날엔 일을 하고 다음날 퇴근해보면 전부 사라지고 없다. 아빠가 '식충이'같다고 느끼는 나 자신이 못된 딸 같아 싫지만 정말 아빠는 식충이 같다. 하루 온종일 집에서 뭔갈 먹고 있는, 밥을 먹고 또 간식을 먹고 딸의 음식이나 간식도 다 뺏어먹으면서 일은 하지 않는, 먹을 것만 탐내는 식충이와 함께 사는 느낌이다.


 아빠가 '가족' 운운하며 나에게 훈수를 두려 할 때가 제일 싫다. 우리가 정말 '가족'이긴 한 걸까? 구성원의 관심사나 취향, 건강상태, 앞날에 대해 관심도, 도움도 없이 같이 살기만 하면 가족일까? 자기 소신을 위해 구성원에게 무기력감과 가난과 캄캄한 앞날을 물려주는 사람이 과연 가족이긴 한 걸까? 나는 나름 대학에서 공부도 잘했고 대외활동 열심히 하는 똑똑한 청년이었지만 어느 순간 진로를 바꿔 서비스직을 하고 있다. 가끔 나를 하대하는 진상 손님을 대할 때면 참 많은 생각이 든다. 왜 굳이 멀쩡한 회사 때려치우고 이런 일을 해가면서 이런 취급을 당하고 있지? 은행 대출도 잘 안 나오는 서비스직을 하면서 또래는 진급하고 연봉이 올라갈 때 연봉이 올라갈 일 없는 일을 나 좋다고 계속하는 게 맞을까? 또래는 이만큼 모으고 집을 사는 동안 왜 난 월세를 내고 학자금을 갚느라 아등바등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드는 날이면 다른 일은 절대 하지 않는 아빠가 비교돼서 더 밉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도 카페일을 하는 것은, 내가 하대당하는 걸 좋아해서가 아니고, 자존심이 없어서가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을 하지 않는 아빠에게 아빠 친구는 자기가 운영하는 주유소가 여러 개 있는데 한 곳에서 주유 일을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고 한다. 월에 300만 원을 준단다. 월 300만 원이면 지금처럼 살지 않아도 된다. 수익이 0이었다가 300만 원이 되면 지금 삶보다 훨씬 여유롭게 살 수 있다. 그런데 아빠는 버럭 화내면서 "내가 그런 일을 왜 해!" 하고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아빠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 자기 길을 고수하는 것이 맞다고 나에게 웃으면서 얘기했다. 그 웃는 표정이 너무 미웠다. 나는 고운 손 다 부르트고 거칠어져 가면서도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생활을 하기 위해, 내 미래를 위해 글을 쓰며 부모님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는데, 아빠는 짐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하나뿐인 자식의 거대한 짐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최근에는 세계 3위 규모의 코인 거래소가 파산했다. 코인들의 가치는 휴지조각이 되었고, 수많은 투자자들이 피해를 봤다. 그런데 아빠는 이때가 기회다 싶어 휴지조각이 된 코인들을 사들였다고 한다. '돈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식재료를 사주지, 내 월세 부담이나 좀 줄여주지.' 생각이 들어 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빠는 그런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늘 쫄딱 망해서 사는데도 우울해하거나 낙담하지 않는 걸 다행이라 여겨야 할지도 모른다. 철이 하나도 들지 않아 나이 육십 중반이 되도록 부모님에게 쉴 새 없이 돈을 빌리고 한 번도 갚은 적이 없는, 첫째이지만 나머지 네 동생들이 하는 효도에 눈곱만큼도 하지 못하는 철부지 아빠를 아직도 온종일 걱정하는 할머니가 안타깝기도, 한편으론 이렇게 철없이 키우신 게 얄밉기도 하다.


 절대 아빠처럼 살지 않기 위해 나는 반드시 성공하고 자리 잡아야 한다. 반면교사 삼을 인생의 모토가 항상 곁에 있는 것이니 아이러니하게도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오늘도 나는, 더더욱 독해져만 간다.

 

작가의 이전글 가을, 너라는 계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