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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05. 2022

가을, 너라는 계절

그대가 그리운 걸까, 그때가 그리운 걸까.

 가을이면 어김없이 내 머릿속을 흔들어놓는 사람이 있다. 서늘한 공기의 냄새와 함께 겉옷 한 겹을 껴입는 계절이 오면 그와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올라 가슴이 몽글하기도,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벌써 그와의 인연을 정리한 지 7년이 지났지만 내 마음은 아직 그를 지우지 못했나 보다. 늘 아낌없이 사랑하기에 이별 후엔 미련이 없는데, 그만은 해마다 내 머릿속을 괴롭힌다. 그를 아낌없이 사랑하지 않아 후회로 생긴 미련도 아니다. 그 누구보다 사랑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늘 방어적이었던 내가 유일하게 내 감정에 솔직했던 사람이다. 그와 헤어지고부터는 짧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고 있다. '어차피 연애 다 똑같지.' 하는 생각은 그때부터 생겼던 것 같다. 그렇게 사랑했던 연애도 끝났는데 어떻게 새로운 사랑이 그를 지울 만큼 강렬할 수 있을까 늘 의심했다. 마음에 벽이 생겨 경계하고 의심했다.


 그렇다고 그가 나에게 엄청 잘해준 것도 아니다. 여자로서 좋은 대우를 받았나 하면 그가 제일 최악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그때 많이 어렸고, 그는 나보다도 두 살이나 어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를 더 사랑했던 것 같다. 여자를 잘 몰랐던 순수한 사람이었다고 애써 위로했지만 나는 그에게 쓰는 돈이 아깝지 않았지만 그는 아까워했단 게 사실이니깐. 세월이 흐르고 드문드문 그가 생각날 때면 '지금은 여자에게 잘해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내 생일 선물 대신 부모님의 선물을 몇 날 며칠을 고민하던, 내 통장잔고가 바닥이 되는 동안 돈을 이만큼이나 모았다고 신나 하던, 그의 철없고 순수한 미운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도 그는 나와 성향이 잘 맞았다. 책과 자연을 좋아하고 봉사활동을 좋아했다. 누가 나에게 이상형이 뭐냐 물을 때 나는 그를 떠올리며, 인성 좋고 착하고 바른 사람이라 답했다. 우리는 봉사활동을 하다 만났다. 나보다 약한 사람을 기꺼이 돕는 착한 마음이 좋았다. 도서관에서 함께 책을 읽었고, 손을 맞잡고 구석구석 많이도 걸어 다녔다. 좋은 차를 타고 쉽고 편하게 하던 연애보다 그와 했던 춥고 더운 연애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의 사랑이 그 어느 것보다 순수하고 열렬했기 때문일 테다. 그와 헤어지고 다시는 나와 성향이 맞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책을 좋아하는,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감상에 젖는,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기꺼이 도와주는 착하고 바른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와 성향이 맞기를 기대하는 건 포기한 지 오래이다. 착하고 바른 사람을 기대한 것조차 욕심인가 싶어 서글퍼진다.


 또다시 그가 떠오르는 때이면 이젠 내가 그리워하는 것이 그 사람인지, 순수하고 열렬한 사랑을 하던 그때인지 헷갈린다. 이토록 누군가를 오랫동안 그리워한 적이 없기에 더더욱 그는 나에게 첫사랑 같은 기억으로 남아버렸다. 가끔 그를 다시 만나는 꿈을 꾸곤 한다. 꿈에서 그는 이미 다른 사람의 남자가 되어있곤 한다. 왠지 모를 서운함과 함께 잠에서 깨곤 한다. 그래, 걔도 참 괜찮은 앤 데 혼자일 리가 없지. 내가 아직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를 잊을 만한 강렬한 연애가 필요하다. 나도 이제 그만 내 마음에서 그를 보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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