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상했고, 아무도 몰랐다.

그때의 나에게 닿기를 바라는 기록.

by 봄 원

무언가 조금씩 어긋나고 있었다.

나는 그걸 꽤 오랫동안 눈치채지 못했다.

나에 대해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자부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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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명보다 더 복잡했던, 숫자보다 더 따뜻했던 이야기”


열다섯 살에 처음 조울증이라는 이름을 들었습니다.

그날 이후, 제 삶에는 병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었고,

저는 스스로를 설명할 때 그 이름을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겪어온 날들은 단순히 ‘조울증’이라는 단어로는 다 담을 수 없다는 것을요.


이 이야기는 병에 대한 기록만은 아닙니다.

살아내려고 애썼던 매일의 순간들, 끝없이 울고 웃었던 감정들,

그리고 그 안에서 조금씩 자라나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던 ‘저’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누구에게나 견디는 시간이 있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냅니다.

이 글을 통해 제가 견뎌온 시간을 나누려 합니다.

그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또 누군가에게는 이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시작해 봅니다.

읽어주시는 당신의 하루에도 작은 평안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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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초.

모든 게 처음이라 조심스러웠고, 조금은 두려웠다.

나는 배구부에 들어가며 낯선 타지 생활을 시작했고

밤낮없이 진행되는 훈련, 낯선 사람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나는 그곳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나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언니와 함께 네 식구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배구부 스카우트 제의를 받으면서 갑작스럽게 아빠와 새엄마, 그리고 아빠 형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전학을 가고, 동시에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고요하던 내 연못에 돌멩이 하나가 던져지고, 그로 인해 잔잔했던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한 것이다.

배구를 하러 가는 것에 내 의견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끝내 “하겠다”라고 말한 순간부터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빠르게 흘러갔다.


여러 사정으로 나는 아빠네 집에 들어가 살 수 없었다.

결국 내가 어릴 때부터 그렇게 무서워하던 아빠 형네 집에 들어가 단 둘이 생활해야 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여러 가지 운동을 매일 해왔기 때문에, 운동 강도 자체가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운동부 내에 텃세와 따돌림은 날 많이 힘들게 했다.

하루 3~4시간씩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늘 큰아버지와 부딪치거나 혼이 나기 일쑤였다.

그때 당시 난 어디에서나 미움받고 환영받지 못했다.


그렇게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가족들에게 “너무 힘들다, 병원에 가봤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자주 꺼냈지만, 내가 사춘기 때문이라 그렇다는 말이 돌아왔다.

여러 증상들을 방치해 버린 상황에서 신체화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먹은 음식이 소화가 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먹은 음식은 게워내기 일쑤였다.

일상생활이 점점 불가능해지자 할머니와 어릴 때부터 다녀 나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 개인병원 의사 선생님을 찾아갔다.

증상에 대해 이야기하자, 선생님은 그것이 신경성일 수도 있다며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라고 하셨다.


그제야 심각성을 느낀 가족들은 기독교병원 정신과에 예약을 걸어놓고 예악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예약날이 되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 이야기를 들으시곤 약을 처방해 주셨다.

집에 돌아와 처방해 주신 약을 하루, 이틀 그리고 그 이상 먹어도 내 일상이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렇게 다음 예약날이 되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의자에 앉아있는 아빠와 내게

“조울증입니다”라고 말씀하시며 그제야 진단명을 내려주셨다.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눈을 감고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 하나님 감사합니다.’ 조울증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느껴진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가족들은 틀렸고, 결국 내가 맞았다는. 그래서 다행이기도, 속상하기도 한 그런 마음이었다.

내가 선생님 말씀에 다행이라며 안도하고 있을 때 아빠는 믿기 힘든 현실에 의사 선생님께 조울증이 맞냐며 재차 확인하고 있었다. 그때 의사 선생님께서 내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셨다.

“00 씨 처방해 준 약 먹고,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고 생활했죠?” 내 대답은 “네”였고 선생님은 다시 아빠를 쳐다보며 말했다. “보통 사람들은 이 약 먹고 3일은 못 일어나요 아버님.” 그 말을 들은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처방해 주신 약이 조울증 환자들이 복용하는 약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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