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아.웃

예측은 금물.

by 오아린

누가 실패의 열매는 달다고 하였던가.

나 같은 경우는, 그 맛이 포카리스웨트 같이 밍밍하고 땀이 입으로 들어온 듯 찝즈름한 맛이었다.


지더라도 마음이 후련한 시합이 있다. 점수를 잃을 때마다 속상한 만큼 얻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것은 마음이 편할 때 가능한 이야기인지, 대회장에서는 점수를 주면서 바로 직거래되는 깨달음의 대가가 없었다. 씁쓸하고 허무했다.


실패라는 비용을 지불하고 배움을 획득하지 못했으므로, 잠시 마지막 공에 대한 불쾌함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나는 방향을 튼 드롭 공에 왜 그렇게 급하고 불안하게 대응했을까.


드롭 지옥이 아닌가.


아직까지 생각나는 마지막 공. 내 파트너는 롱서브로 마지막 점수를 노렸다. 밀린 상대편은 내쪽 네트 가장자리 쪽으로 드롭을 놓았고 나는 예상 못한 경로에 급하게 스텝을 밟으며 다가가 안정되지 못하게 쳐서 올렸다. 그러다 네트에 걸려버렸다. 그걸로 졌다. 망했다. 생각해 보면 다른 클럽에 놀러 갔을 때도 이렇게 황망하게 깨진 적이 있었다. 정확히 의도한 지점에 공을 뚝 떨어뜨리는 드롭이 낯설고 어려운 문제였다. 당시 드롭을 잘 놓는 상대가 2년을 훌쩍 넘긴 만년 초심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저분은 D급이나 마찬가지야'하며 넘기고 잊어버렸다. 그러고 나서 대처 연습을 하지 않았다. 나는 허술했고, 대회 첫 게임 상대방은 D급수로 출전해 수상한 이력이 있을 만큼 노련했다. 결국, 연습경험부족이었다. 이제야 깨달음의 과실을 획득한다. 그것은 짠맛이다.





두 번째 경기는 첫 경기를 끝내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바로 호명되어서 나갔다. 1점 차로 지고 제자리를 찾아가는데 "첫 경기인데, 잘-했어요.", "아-주 재밌게 봤습니다." 등 미적지근한 칭찬을 받았다. 그럼 두 번째 경기는 더 잘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뿐 확신은 들지 않았다.


경기에서는 같은 팀끼리 옷을 맞춰 입는다. 왜냐하면, 둘 중 누가 어떻고 저런지 상대방에게 구별하기 어렵도록 하는 분신술이랄까. 같은 옷을 입었을 때 여자의 경우 머리 짧은 애, 묶은 애 정도로 속닥거릴 수 있겠지만, 빨리 움직이는 와중에 머리카락 색이 아닌 스타일로는 잘 구별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한 술 더 떠 "언니, 우리는 마룻바닥 색깔에 맞춰 갈색으로 입을까요?"라며 농도 쳤었다. 공부 못 하는 애들이 시험 전날 잘 깎이는 연필깎이 찾아다니는 꼴이랄까. 하여튼.


첫 번째 팀은 초록 계열로 옷을 입어서 구별이 어려웠던 반면, 두 번째 상대 팀은 고맙게도 흰색과 검은색으로 구별되었다. 나의 사전 데이터 수집 결과 검은색 옷을 입은 쪽이 대회수상 경험이 있었고, 흰색 티셔츠에 긴 바지를 입은 쪽은 우리처럼 아무 이력이 없었다. 게다가 움직임에 걸리적거리는 긴 바지라니, 정말 기대 없이 나온 왕초구나 싶었다. 게임이 시작되면 5점 즈음까지 상대방의 전술이나 실력을 살펴보는 구간을 가진다. 나는 흰색 옷 선수에게 공을 몰아줬고, 내 파트너 민주언니는 어쩐지 검은색 옷 선수에게 집중적으로 공격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의 공격이 분산된 탓인지 상대가 만만해 보이면서도 점수를 내기가 힘들었다.

아린 씨, 검은색, 검은색이야!


우리 클럽 사람들이여 플리즈 드랍 더 메시지! 응? 내 귀를 의심했다. 아뿔싸. 흰색이 아니고 검정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언니, 검정 공격하래요!" 끄덕끄덕하는 언니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알겠다고 했다. 그때부터는 검은색 옷의 선수에게 공격할 기회를 찾아보려 했다. 함께 10점대에 들어서면서 뒤늦게 알아차렸다. 흰색 옷 선수는 공격과 전위수비에 강했고, 검은색 옷 선수는 강점은 보이지 않았지만 후위 수비를 담당하고 있어 공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허점이 보이면서도 어떻게 뚫어야 할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두 팀 모두 만만해 보였을 위층 응원석에서는 난리가 났다. 주로 상대팀의 응원객이었다. 귀가 예민해서 어지러운 나는 상대방에 대한 조언도 내 것인 것 마냥 끄덕이면서 들었다. 모든 것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평정심과 집중력이 흔들렸다. 공격은 맹해지고 수비는 허술해졌다. 상대팀의 기세가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결과는,

-언니, 뭔가 어려운 경기였네요. 그래도 잘했다.

-아니야, 아린아. 이거 우리가 이길 수 있었어.

-진짜? 둘 다 잘하는 것 같던데. 검은색 공격하라는 말은 듣고도 잘 안되긴 했어요.

-흰색 옷 선수가 전위가 좋고 커버를 잘했고, 검은색 옷 선수는 나 예전에 같이 게임해 본 적이 있었어. 게임 끝나고 나를 찾아와서 급수를 물어볼 만큼 실력차이가 나서 할 만했는데. 우리가 질 게임이 아니었어 정말.


우선, 상대를 파악하는 데 오해가 있었다. 사전 조사를 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 둘 중 한 명은 경기 수상 이력이 있어 일단 잘할 것이라 지레 겁을 먹었었다. 또, 둘 중 한 명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 헛다리를 짚고 애먼 데 잘 먹히지 않는 공격을 했다. 게다가, 나와 파트너는 동상이몽으로 향방이 다른 공격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먹힐 리가 있나. 나의 앞선 파악이 독이 되었다. 몸이 바로바로 반응하지 않는 게 느껴졌을 때 경기를 잠깐 끊고 언니와 전략을 주고받을걸 그랬나. 나는 늘 계획하고 움직였고, 미리 세운 계획이 틀어지면 틀렸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었다. 자숙모드로 들어가려는데 민주언니가 다시 해맑은 얼굴로 나를 다독인다.


"아린아 근데, 대회장에서는 못했던 사람도 평소보다 잘할 수 있고, 잘하던 사람도 긴장해서 못할 수 있어. 다들 실력이 계속 오르면서 대회에 나오니까 예측이 어렵긴 해. 우리 첫 대회인데 이 정도면 잘한 거다."

나보다 구력이 한 달 짧은 언니의 강단은 나보다 한 두 해 더 앞 선 것이었다. 베리베리스트롱 베이비. 든든한 내 짝.


게임이 끝난 후 검은색 옷 선수는 같은 동호인들에게 둘러싸여 잘했다고 칭찬을 받고 있었고, 흰색 옷 선수는 묵묵하게 바로 혼합복식을 준비했다. 혼복 경기에서는 보통 여자가 네트 앞을 지키며 빠른 공에 대처하는데 여유가 있으면 남자 선수까지 팔로우하러 뒤로도 빠진다. 앞 뒤 가리지 않고 철벽수비를 해내는 긴 바지 선수는 알고 보니 빈틈없는 우수 초심자였다. 수상 이력 없어도 숨은 실력자. 욕심을 버리고 실력을 쌓기 위해 출전한다면 이런 루트도 나쁘지 않을까 싶다.


슈퍼 계획형 성격인 나로서 아차차 무릎 탁 치게 되는 실패의 교훈, 달큰한 고배를 마신다.

무엇을 어찌 예측하랴-.

공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출발하자. 그래도 늦지 않다.


예선전 마지막 게임을 앞두고

다시 마음을 비운다.

계획도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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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