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54번의 승리
우리 팀은 토너먼트 대진 중간에 배치되어, 이미 두 게임 연속 져서 본선 진출은 어려운 것으로 결론이 났음에도 한 게임을 마저 해야 했다. 승승장구하는 경쟁팀이여 우리를 즈려밟고 가시렵니까. 배드민턴 신이 있다면 우리의 근성을 테스트한 것이리라 믿는다. 믿음이 노력으로 됩니까, 라고 따져 묻고 싶다만.
이쯤 되니, 여태 성공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줄줄이 소시지같이 이어지는 실패 글에 신물이 난 독자가 있을까 염려스러워진다. 혹은, 얼마나 실패를 하는 것인지 지나가며 궁금해하는 나그네 독자가 있다면 속 시원한 결과로 대접하고 싶다. 허구 하나 없는 퍽퍽한 기록을 공개한다. 어쩐지 목이 멘다.
점수가 알려주듯, 반도 따라가지 못했다. 이번 마지막 경기에서 패한 가장 큰 이유는 실력이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붙어봐서 실력을 아는 상대 팀이었다. 다른 클럽에 놀러 갔을 때 만나서 게임을 해 본 적이 있었고 그때도 깨끗하게 졌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다가가 구력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었고 정확히 우리보다 두 배 기간의 연습 기간을 보낸 자매였다.
자매. 그것은 내가 다음 생에나 소망할 수 있는 운명 공동체다. 연민과 우정이 돈독하게 쌓이며 성장하는 최고의 혈연관계가 아닐까. 남매로 자란 나는 늘 자매의 그것을 부러워했다. 내 눈에 자매는 한 몸이자 두 몸이고, 친구이자 모녀가 되는 신기하고 부러운 사이였다.
옷 색깔이나 헤어스타일, 심지어 생김새도 많이 달랐지만, 그들을 구별할 필요가 없었다. 두 사람의 팀워크는 튀는 곳 없이 깔끔했다. 기운을 올리기 위해 서브를 넣기 전에 라켓과 라켓을 부딪치며 화이팅! 하고 다짐하는 작지만 거창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 없었다. 파트너가 실수를 할 때 괜찮아, 오케이라고 위로하는 전형적인 멘트도 들리지 않았다. 평생 알콩달콩 놀기도 하고 치고받고 싸운 경력이 40년 넘게 쌓인 그녀들에게 무슨 의식이 필요하겠는가. 같은 배에서 나와 피를 나눈 사이다. 서로를 믿고 셔틀콕에만 집중할 수 있다. 실력이 오롯이 발휘되는 것이다.
같은 클럽에 속한 우리는 구력 8개월과 7개월로 대회에 나왔고, 슬프지만 딱 그만큼의 우정과 믿음이 자랐을 것이다. 실력이 모자란 것은 노력한 시간이 그들의 반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속 시원히 인정할 수 있다. 민주 언니와 나의 파트너십을 올려본답시고 당장 자매결연을 한다 해도 그들의 돈독한 40년을 따라잡을 수 없다. 이것은 아무리 스트롱베이비라도 이겨내지 못할 배앓이지 싶다.
언니, 오늘만 반말해도 돼요?
궁여지책이었을까. 조금이라도 낯섦이 남아 있는 상대와 더 가까워져야 할 때 한국인들은 서둘러 '말놓기'라는 방편을 쓴다. 나도 그랬다. 평소 존댓말을 하는 언니에게 대회 경기 중에 말을 길게 하기에는 곤란할 것 같았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설명조의 부탁이다.
- 언니, 제가 뒤에서 스매시할거니까, 앞으로 나가주세요.
- 네트 가까이 붙여 살짝 넘길 테니, 뒤로 빠져주세요.
불꽃처럼 떨어지는 공 위치를 보면서 박자에 맞게 스텝을 밟으면서, 상대 팀 위치를 파악해서 스윙의 크기와 종류를 정하는 와중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파트너에게 이토록 장황한 문장은 할 수가 없다. 바람처럼 날아오는 공 속도에 맞게 나의 말도 깃털만큼 짧고 가벼워져야 한다.
- 나가!
- 빠져!
이렇게 명령형에 느낌표가 자연스럽게 붙는 것에도 의가 상하지 않도록 우리는 합의하였다. 드라마에서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촌각을 다투는 의료진 역할의 대사도 그렇지 않던가. '매쓰!', '썩션!' 처럼 다급한 호령들 말이다.
정확한 실력 차이와 애석한 친밀도로 우리의 기세는 긍정마인드로 살렸지만 꺾였고, 남은 근성을 모아 최선을 다했지만 꺼져가던 승리의 불씨는 완전히 밟혀 꺼졌다.
3전 3패.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세 번의 실패가 아니다.
특히, 내가 다 졌다고 했을 때 웃은 사람 잘 보길 바란다(상처받은 거 맞네).
첫 번째 경기에서는 25대 24로 스물네 번을 이기고, 스물다섯 번을 졌다. (총 49번의 랠리)
두 번째 경기에서는 25대 18로 열여덟 번을 이기고, 스물다섯 번을 졌다. (총 43번의 랠리)
세 번째 경기에서는 25대 12로 열두 번을 이기고, 스물다섯 번을 졌다. (총 37번의 랠리)
모두, 54번을 이기고, 75번을 졌다. (총 129번의 랠리)
나와 민주 언니는 첫 대회에서 엄청난 경험을 쌓았다.
이제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눈빛으로 마음을 주고받는다.
-'다음 대회는?'
-'언제든지 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