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 우당탕탕
대회 당일.
보통 배드민턴 경기는 주말 이틀에 걸쳐 아침부터 오후 6시경까지 진행된다. 같은 날 다른 지역대회가 근처에서 열린 덕인지, 내가 참가한 대회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약 300여 명의 선수들이 신청했다. 각자 자신의 게임 시간에 맞춰 가면 되었다. 토요일은 초심자, 그리고 혼복경기로 구성이 되고 일요일은 나머지 급수의 게임이 잡힌다. 규모가 큰 전국대회에서는 우승이나 준우승을 하면 승급이 되고, 지역대회에서 3위까지는 승급과 상관없이 상품을 받고 기록이 남는다. 참가자 수에 따라 승급을 시켜주는 범위 우승자까지일지, 준우승 또는 3위까지일지가 정해진다고 한다. 빠른 승급이 부담스러운 경우에는 실력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승급이 없는 지역대회만 나가는 일명 사기캐도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무늬만 초심자에 진면모는 D급 이상의 스킬이 드러나면 놀기 삼아 나와서 상품을 휩쓸어간다는 핀잔을 듣는다고. 찐초심인 나로서는 그저 대단한 이야기다.
정직한 초심자로서 억울한 부분이기도 했다. 구력 5개월 때쯤 대회를 한번 나가보자고 했던 생각이 이제 와서 얼토당토않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하다. 보통 어떤 분야든 초보는 1년까지의 범위를 두고 어리바리함을 다 벗어나제 못한 자를 말한다. 1년이 넘어가면 해당 분야의 흐름도 읽고 세상의 때도 묻어서 갖가지 스킬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왕초보 인간으로서 갖가지 의례를 통과한 것을 축하하는 돌잔치도 그래서 있지 않가. 이름도 어려운 크고 작은 바이러스와 세균들을 이겨내고 제힘으로 세상과 싸워볼 면역력을 갖추는 그때가 1년이다. 속싸개에 꽁꽁 싸여서 천장에 달린 모빌만 보며 누워있다가 두 팔과 두발이 자유로워지는 시기를 거치고, 고개를 들고, 몸을 뒤집고, 배를 밀다가, 이윽고 뭔가를 잡고 일어서보려는 시기. 그래서 이제 배밀기를 끝낸 구력 8개월 차가 본 뛰어다니는 2년 차 배드민턴 초심자는 얄미웠다. 알고 보니, 뛸 줄 아는 초심의 선수들이 주로 대회에 나왔다.
이번에 나와 함께 대회를 나가는 민주언니는 나와 마찬가지로 배밀기 이후 기어다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웬만한 초심자들도 워후 소리가 날 만큼 파워풀한 클리어가 가능했다. 푸시로 끝내는 전위 스킬도 훌륭했다. 나도 드라이브 싸움에서는 물러서지 않는 깡이 있었고, 스매시를 자주 때리는 겁 없는 배밀이였다. 우리는 밀고 때릴 줄 아는 스트롱베이비. 하지만, 스텝 연습이 부족해 코트 모서리로 날아오는 예리하거나 강력한 공격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실력이 부족하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우리는 기복을 탔다. 상대에 따라, 그날 컨디션에 따라 보여지는 실력이 달랐다. 어떤 날은 우승도 하겠다는 소리를 들었고, 어떤 날은 대회는 연습 삼아 경험 쌓으러 나가는 것이라는 위로의 말도 들었다. 어쨌거나.
대회 날 이른 아침 우리는 체육관으로 가서 몸을 풀었다. 당사자들보다 더 걱정을 하는 주변 선배들이 한 분씩 와서 잡아주고(돌봐주고) 갔다. 대회 당일 듣기에는 내용이 충실한 레슨 비슷한 조언을 받고 우리는 웃었다.
아린이 오늘 하고 싶은 거 다 해.
나도 한 긍정하는 사람인데, 민주 언니는 남편분 응원하느라 대회장 구경만 2년 넘게 다닌 이력이 있어서인지 대회가 떨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긴장 좀 하시죠, 하하." 어쩐지 나까지 나사가 풀리는듯했다.
대회장에는 다양한 모습이 보였다. 간식을 먹고 있는 사람, 구석에서 줄넘기를 하며 준비운동을 하는 사람, 대진 중인 팀원을 내려다보며 응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2층 넓은 실내 체육관 관중석 앞을 빙 둘러 뛰어다니는 사람. 이른 오전 시합을 끝내고 늦은 오후 시합이 있기까지 시간이 많아서 돗자리 펴놓고 누워 쉬는 사람까지.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나는 받은 초콜릿을 먹으며 아는 선수들을 응원했다. 생각보다 2층 응원객들의 음성이 1층 아래에서 경기하는 선수들 귀에 잘 닿는지 응원인지 질타를 받은 선수가 가끔 위를 쳐다보기도 했다.
대진표가 나온 날, 예선 게임에서 만나는 상대방 팀 경기이력을 찾아봤다. 첫 번째로 붙는 팀은 50대 여성들로, 대회에서 수상한 이력이 있었다. 게다가 D급수로 출전해서 순위에 오른 것을 보니 초심자 중에서도 스킬이 많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오아린 선수, 경기 준비하세요."
이길 승산이 크지 않다는 생각에 차분한 마음으로 코트로 향했다. 우리는 늘 하던 대로 공격적으로 공을 높고 세게 밀고 또 밀었다. 그래서 우리보다 힘이 없어 보이는 상대 팀은 연속으로 밀리고 실점이 이어졌다. 할만하다고 생각했고, 다양한 공격과 수비도 시도해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세 점이 앞서거니 두 점이 따라오거니 하다가 우리가 15점이 된 이후부터 슬슬 전세가 역전되었다. 우리의 장점과 수를 파악한 상대팀 50대 상대방 팀은 우리가 수비하기 어렵도록 네트를 살짝 넘기는 드롭을, 그것도 꺾어서 넘겨주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까지 본 초심자 중에 이렇게 방향을 틀어서 넘기는 동호인은 없었다. 공을 멀리 보내고 나서 제자리로 돌아와서 다음 공에 대한 대비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 연습은 거의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력 구멍이 정직하게도 났다. 응원하던 목소리 중에 한 사람은 깔깔 웃었다. 우리 게임이 흥미진진하고 웃펐던 것 같다. 웃픈 걸로 따지면 우리가 이겼고. 같은 방식으로 계속 실점하다 졌다. 결과는, 이랬다.
클럽 선배들의 말이 떠올랐다.
'초심 경기에서는 클리어만 잘해도 반은 이겨요.'
(정확히 그랬다.)
'드롭 제대로 놓을 줄 아는 초심자는 본 적이 없어요.'
(아니, 내가 봤다네.)
마지막 드롭 공은 내 쪽으로 아슬아슬하게 넘어왔는데 넘기다가 네트에 걸려버렸다. 내 실수로 진 것이라 짜증 나고 속상했다.
"언니, 미안해요." 사과하며 민주언니 얼굴을 쳐다보는데, 표정이 밝았다.
"아린아, 우리 생각보다 너무 잘했어! 난 좋았어."
언니의 남편은 우리 경기를 보고서는 희망을 보았다고 한다. 나는 특히 이 두 사람의 긍정파워에 어쩐지 전의가 두세 걸음 뒷걸음치게 된 것 같았다. 첫 번째로 손에 쥔 것은 1점 차의 패배. 앞으로 두 게임이나 남았으므로 스트롱베이비는 계속하여 상대가 뛰는 속도에 맞춰 우당탕탕 기어봐야 했다.
이상하게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