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이 선생이로세

극약처방이 필요하십니까?

by 오아린

일본어 능력 시험일이 한 달 남았을 때부터 정호와 나, 우리 팀은 전략을 짜야했다. 꾸준히 공부하고 정직하게 연습하되, 어쨌거나 시험은 진심을 다해 봐야 하는 것이므로. 지금까지 걸어왔다면 이제는 뛰어봐야 한다. 그러면 다음 시험의 문턱이 낮아지기도 한다. 이제 뛰는 법을 배우려는 내 순수한 제자에게는 문지방이 닳도록 언어의 방을 넘나든 선생님이 곁에 있다. 단기간에 최대 효과를 내는 훈련법을 생각해 보자.




예뻐지고 싶은가? 수시로 거울을 보라. 이상형에 가까워지기 위해 일단은 현재 모습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자꾸자꾸 보다 보면 본인 상정의 '예쁨'에 미약하나마 가까워지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하루에 두 번 거울 보는 사람과 하루에 열 번 거울을 보고 뭔가를 하게 되는 사람의 변화 차이는 크다. 화장실은 생리적인 볼일만 보라도 있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는 커다란 거울이 있다. 엘리베이터에도 있다. 수시로 더 아름다워지고 싶다면 길을 가다가도 쇼윈도로 비치는 본인의 걸음걸이를 체크해 보자. 최소 통제가능한 '못남'은 덜어낼 수 있다. (거울치료 필요조건 1 :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가? 글을 쓰라. 솔직하지 않으면 진짜 글은 써지지 않는다. 작가들은 자신의 발바닥까지 보여주는 심정으로 가장 낮은 자아로부터 고백한다. 그런 글이 잘 읽히기도 한다. 써놓고 보면 내가 이 지경이로군 싶겠지만, 자꾸 쓰다 보면 그 지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성찰이 따라온다. 쓸 때마다 알게 되는 것이 나는 한 문장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알맹이 없는 글자와 소리를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정보성이 없는 말그릇에는 유머라도 담아야지 싶어 실없는 사람이 되어보기도 하는 것이다. 주절주절 술 취한 사람이 기억도 못할 이야기를 쏟아낼 때처럼 말의 핵심보다 말이 길어질 때는 눈을 비비고 새로이 보며 덜어낸다. (거울치료 필요조건 2 : 표현하고 싶은 욕구.)


외국어로 유창하게 말하고 싶은가? 녹음을 하라. 내 목소리들을 들어보자. 형체도 틀도 없는 공기와 소리 비율이 귀를 간지럽히는 순간 낯이 뜨거워질 수 있다.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너무 낯설어요. 네, 그 낯선 목소리가 당신의 목소리입니다.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저장된 내 목소리를 다른 기계로부터 들을 때 비로소 나는 제3자의 귀가 되어 객관적으로 듣게 된다. 서둘러 더 나은 발음과 발성과 악센트, 인토네이션, 문법으로 말을 업그레이드하고 싶어진다. 이내, 책을 펴고 목적이 뚜렷해진 공부를 하게 되리라. (거울치료 필요조건 3 : 좋아하는 마음.)


정호의 귀도 마찬가지였다. 정호가 찾아 들었던 5년 이상 쌓인 일본어 음성은 거의 완벽한 발성을 가진 성우들의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정호의 가장 좋은 '거울 선생님'은 바로 본인의 귀였다. 어쩌다 듣는 본인의 일본어는 생각보다 더 마음에 안 들었을 것이다. 점점 귀보다 입이 열리지 않는 이유였다. 예상대로 청해는 풀이할 것이 없을 정도로 잘 풀었고, 역시나 문법과 독해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문지방 선생'의 해결안은 이랬다. 시험장에서 목소리를 내어 귀로 듣고 이해할 수는 없으니 속으로 소리를 떠올려 청각신경에게 O, X를 판단토록 연습시켰다. 아리송한 문제는 무음으로 소리를 상상해서 청각신경에 의존해서 풀라는 말이다. 정도와 요행 사이의 어디쯤 같지만, 정호가 가진 실력에서 모르는 문제를 풀 때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




자, 오아린 당신에게도 묻는다. 배드민턴을 잘 치고 싶은가? 그렇다면, 본인의 경기를 보라. 백번 맞는 이론을 설명을 들어도 머리는 이해하지, 몸은 알아먹지 못했다. 코치님이 답답해서 째려봐도 웃음만 나왔지, 정곡을 찌르지는 못했다. 단시간에 자세를 고치거나 문제점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나는 나를 봐야 했다. 생각해 보니, 하이클리어 자세가 몇 달째 고쳐지지 않을 때 우연히 찍힌 사진에서 나는 무릎을 탁 쳤었다. 그립 잡는 방향이 잘못된 것은, 그간 코치님의 완벽한 그립 잡는 모습만 봐왔던 내 눈이 즉시 판명해 주었다. '정말 틀렸네.'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실수투성이 초심자이므로 내가 찾아보는 선례는 모두 정석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깨끗한 자세를 찾아보고 싶어서 유튜브를 통해 안세영의 클리어를 눈에 담는다. 호~, 예이~, 우와~, 대박~ 이런 말을 하며 안세영을 눈에 담았었다. 그러다 체육관에서 찍힌 내 영상을 보면... 헐-, 왜-, 허-, 참내-, 이런 말만 나왔다.


얘들아 치료할 시간이야


게임을 하고 나면 영상이 온다. 조용히 쏟아지는 피드백 영상에 그간 높아진 눈이 서둘러 제 자리로 뛰어 내려와 당장의 실력을 점검한다. 내 눈 선생에게 묻는다.

-이게 맞냐.

-틀렸지.

-내일 또 체육관 가서 연습해야겠지?

-뭘 묻냐.


다친 영혼이 있는지 살핀다. 없다.

지친 마음이 있는지 헤아린다. 없다.

질린 자아가 있는지 확인한다. 없다.


무한 피드백, 무한 연습의 루프가 생성되는 원리.

대회는 코 앞인데, 초심자 탈출 길이 요원하다.

(거울치료 충분조건 : 미쳐 있거나, 진심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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