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호] 나를 보여주는 책 한 권
잠이 별로 없는 편이다.
이것은 어릴 때부터 비난보다 칭찬을 듣기 쉬운 조건이 되었다. 부엌에서 밥솥을 여는 소리가 들리면 내 두 눈은 망설임 없이 반짝 떠졌다. 몸을 일으켜 가만히 침대에 걸터앉아 있으면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고요했던 적막이 깨져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기에 일어난 것인데 효녀라는 소리를 들었다. 아빠가 졸면서도 쉽게 끄지 않는 거실 텔레비전 소리에 잠이 오지 않아 독서실에서 돌아온 후에도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했다. 피곤했지만 앉아서 자는 재주가 없고 엎드려 잘 용기가 없어 학교에서도 졸거나 잠을 청해본 적이 없었다.
귀도 밝았다.
그것은 기능적으로 훌륭한 청각이지만 심리적으로 불편한 신경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동생이 아파트 안에서 사라져 몇 시간이고 행방불명이 되었던 날이었다. 엄마가 한참이나 돌아다니며 찾고 찾다가 다른 방법을 찾아볼 때 나도 나서서 단지를 한 바퀴 돌았다. 잘 가지 않는 놀이터 쪽 건물 2층에서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고, 엄마에게 알려주었다. 학교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는 늘 귀를 찌르도록 갑작스럽게 울렸다. 째지는듯한 멜로디는 정확하지만 듣기에 불편했고 수업시간 50분보다 쉬는 시간 10분이 더 힘들었다. 몇 백명의 입에서 쏟아지는 거대한 소음들을 참고 견뎌야 하는 소리의 전쟁터였다. 복도에서 울리는 누군가 싸우는 듯 거친 높낮이의 음성과 뛰어다니는 발소리는 심장까지 파고들어 쿵쾅쿵쾅 고동을 거칠게 했다.
이런 나는 두통과 감기를 자주 앓으며 자랐다. 큰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는데, 진단하기를 급성장기 불균형적인 호르몬 작용으로 인한 스트레스성 두통이라 했다. 나는 급하게 크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스트레스성은 맞을지도 모른다. 조심성 많은 성격에 민감한 기질이니, 커다란 세상의 규칙과 변화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조금씩 깨지며 컸을 것이다. 병은 아니나 증상을 호소하니, 이것은 꾀병이라 불려 마땅했다.
시인 박준의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다시 꺼내 읽었다. 30대에 제목 한 줄로도 시집을 살 이유가 충분하다고 여겨 손에 넣은 후 읽고 읽고 자꾸 읽었던 책이다. 진지한 가운데 기발한 표현들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을 끌었던 것은 바로 시인의 꾀병 기질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은 병이 아니지만 말로 다 하지 못할 증상이 따르므로, 시인은 그 아픔을 계속해서 토로한다. 불치의 마음은 기침과 열병으로 변신해 독자들에게 가닿는다. 작가는 그렇게 꾀병을 부림으로써 극복하고 성장한다.
꾀병은 누군가 옆에서 상태를 지켜봐 줄 수 있을 때 부리는 어리광의 한 형태로 나타난다. 몸의 통증으로 인지하는 자기연민이자 타인에게 호소하는 강력한 애정의 표현이다. 아픔을 뒤늦게라도 전할 상대가 없다면 꾀병은 애초에 시작되지도 않는다. 하루이틀 예민했던 구석들도 주인이 혼자인 걸 눈치채면 알아서 다시 눈을 감고, 귀를 무디게 하여 숙면을 취할 것이다.
인생의 첫 계절에 나는 늘 꾀병을 부렸다. '엄마, 나는 사실 착한 게 아니야'라는 고백. '선생님, 저는 성실한 학생이 아니에요'라는 토로. '친구야, 나는 너와 많이 다른데'라는 주장으로, 나는 조금씩 때때로 아팠다.
인생의 두 계절이 끝날 무렵 깨달았다. 이제는 잠도 귀도 무뎌진 내가 꾀병 부릴 줄 아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들이 내 곁에 없어, 나는 더 이상 꾀병을 부릴 수 없다.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나를 지켜주던 엄마가, 매일같이 지각해도 예뻐해 준 선생님이, 팔짱 끼고 화장실까지 같이 가는 친구들이, 눈 앞에 없다.
앞으로도 계속 나와 두 살 차이 나는 인생 선배로 살아갈 박준 시인의 작품을 기대한다. 그의 슬픔 속 사람앓이에 같이 아파하고 공감하던 시기의 나를 기억한다. 열 손가락이 모자라도록 꼽히던 당신들의 이름을 수없이 지어먹던 따뜻하고 뜨거운 계절이 있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아픈 곳이 없다.
성글었던 밤이 이제야 조금 더 짙은 색으로 물든다. 별이 더 밝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