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는 시작일 뿐
2024년 10월 21일 10시 30분.
나는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큰 결심을 하고 내린 결정은 아니었고, 그냥 살부터 빼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전날 난 짝꿍과 함께 강릉을 방문했다. 흐린 날씨에 바람이 제법 불었고 찾아가려고 했던 장소의 박물관은 너무 멀어서 기운이 쭉쭉 빠지고 있었다. 스마트폰의 위치와 박물관의 위치가 어딘지 어색하여 계속 제자리를 돌고 또 돌면서 어지간히 기분이 상해 가던 터에 부글부글 가슴 안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 중이었다.
결국 냅다 길 한가운데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 갱년기?'
그래, 자연스럽게 노화가 진행되는 중인 내게 아직 나이 듦에 대한 진솔한 성찰이 없던 내게 작은 변화에도 화가 나고 몸이 쉽게 뜨겁거나 차가워지고, 무기력과 우울이 구름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그날 강릉의 날씨처럼 말이다.
"인생 뭐 있나? 좋은 거 구경하고, 좋은 곳 다니고, 맛있는 것 먹고 그런 거지."
이런 낙관적 삶의 자세 뒤에는 사실 자조적 푸념도 숨어있다. 나는 자주 이런 푸념을 습관처럼 모셔두고 살았다. 아니, 신봉하고 살았다고 하는 편이 옳다.
"두부전골만 먹어서 시장한데, 경포대 근처에 가서 저녁 먹고 갈까?"
"응..."
짝꿍은 내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몹시 애쓰는 중이었다. 마지못해 그의 제안을 수락하고 경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저 멀리 어둡고 세찬 바람이 부는 바다를 향해 내 몸을 마주하고는 알 수 없는 공포와 일렁이는 불안을 움켜쥐었다. 경포대 앞에서 우리는 바람결에 방향감각을 잃은 머리카락이 나부대는 전신사진을 몇 장 찍고 활짝 웃었다.
저녁 즈음 근처 횟집 중에 사람이 많아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서 사장님이 직접 불러주는 90년대 라이브를 들으며, 해물 라면을 먹었다. 이 라면이 내가 다이어트 전에 먹은 마지막 라면이었다.
다음 날, 나는 유튜브 영상을 시청했던 것 같다. 이것이 다이어트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가 된 듯하다. 대충 기억을 더듬어 보자. 갱년기에는 굶으면 안 되고 식습관을 바꾸고 운동도 바꾸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알다시피 유튜브 알고리즘은 유사 주제에 해당하는 영상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선택하도록 유도한다. 그럼에도 보기만 하고 실천은 영상 속 사람들만 하는 중이지 나와는 상관이 전혀 없다. 그런데 10월 21일은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몰라도 이런 다이어트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냥 할까?'
나는 2024년 10월 21일 오전 10시 40분경 쉽게 마시는 단백질 음료를 한 개 마신 후, 자주 먹던 커피를 끊고, 라면도 끊고, 캐모마일과 루이보스 차를 주문했다. 그리고 알룰로스와 포두부를 샀다. 마침내 집에서 옷걸이 대용품이 된 먼지 폴폴 쌓인 실내 자전거 위에 올라탔다.
이것이 변화의 시작이었다. 수많은 다이어트 성공담은 그저 남의 성공일 뿐 내 것이 아니다. 남들의 성공을 쳐다보기만 할 뿐, 정작 그들의 이야기에 내 시간만 낭비하는 모순을 언제까지 경험해야 할까? 언제까지 주인공 곁의 조력자로 살 것인가? 지금까지의 삶이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하다면, 아마 갱년기 장애는 점점 더 심해져서 난 누구? 여긴 어디? 수준의 광탈을 경험하겠지?
'그냥 리셋하자!'
강릉에서 본 먹구름 가득한 하늘과 검은 바다가 떠오른다. 바다의 빛은 늘 검지 않다. 구름 사이로 해가 나오면 언제 그랬냐며 아름다운 푸른빛을 발한다. 이 모든 것은 시간에 달렸다. 시간은 소중하다. 시간을 내 것으로 돌리고 올바른 선택을 하자. 먼저 해묵은 살부터 정리하자. 그래, 그냥 다이어트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