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냥 리셋하다

3일의 기억

by 리플로우

과거 한약을 먹고 가뿐하게 7킬로그램을 빼봤지만, 급히 뺀 살은 10킬로그램을 찌우는 문제를 낳았다. 집안 청소는 하루만 지나도 마법처럼 먼지를 보태기 쉽지만, 살만큼은 빼기보다 더하기가 수월한 법이다. 나 역시 빼기보다는 찌기에 친근한 몸을 장착했다. 그렇다고 어릴 때부터 통통한 체형은 결코 아니었다. 날아갈 듯 가벼웠고 50킬로를 넘는 법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나이 든 후부터는 60킬로그램이 디폴트 값이었다. 앞자리가 6이 된 채로 살아도 후덕미를 자랑하고 다녔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그 까닭은 단순했다. 살이 찐 후 근력이 생기고 지구력도 생겼다. 힘든 일이나 밤샘도 어렵지 않았다. 날아갈 듯 가벼웠던 몸일 때는 자주 피곤해서 잠도 많이 자고 느릿느릿 걸었다. 자연스럽게 나의 몸 근육이 발달 중이었던 것. 팔뚝이나 허벅지는 탄탄했고, 배가 나온 편도 아니었다. 가족이나 친구가 살쪘다고 비난해도 내 몸을 왜 너희들이 판단하냐? 내 몸은 내 것이니 말하는 당사자들 몸이나 잘 돌보시라 여유롭게 답해주고는 웃었다. 한마디로 호기로운 정신과 타인의 눈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강한 멘탈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갱년기 증상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하던 몇 년 전. 여기저기 쑤시는 몸에 깊은 잠을 자지 못했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다가 숨이 가쁘면서 머리에 땀이 줄줄 멈추지 않고 흘러 내리기 시작면서 부터였다. 이 증상은 24시간 나를 괴롭히며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 이때 내가 한 일은 각종 갱년기에 좋다는 비싼 영양제를 사는 것이었다. 그런데 영양제를 장복해도 그때뿐,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도 없었고 체중은 같은데 몸의 라인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근육이 지방으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삶의 습관이 잘못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렇다고 완경 전인데, 호르몬 처방을 받을 수도 없으니 어떡하면 좋을까?

일단, 걷기 운동을 했고, 하루 한 번은 1시간 이상 걸었다. 어느 날은 6500보, 어느 날은 7800보, 그러다가 8000에서 10000보를 왔다 갔다 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렇게 3년 간 총 4킬로 남짓을 뺏다. 서서히 걷다 보니 살도 진심을 다해 서서히 빠지고 있었다. 몸처럼 정직한 것도 없다. 움직인 만큼만 효과를 본다. 사실은 더 빨리 빼고 싶었지만, 4년 전 내겐 여러 고비가 한꺼번에 몰아치고 있어서 다이어트는 엄두도 못 냈다.


2020년 8월. 길을 가다가 중심을 잃고 미끄러져 어깨를 다쳤다. 염증이 진전되어 고통스럽게도 한쪽 어깨에 여러 번 주사를 맞고 간신히 재활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가동 범위를 늘렸지만, 다른 쪽 어깨는 망가져서 2021년 5월 결국 수술대 위에 올랐다. 수술받은 어깨는 금방 낫지 않는다. 수술보다는 그 후의 재활이 훨씬 오래 걸리고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3년 내내 어깨의 가동 범위를 늘리기 위한 운동 외에는 심한 운동은 꿈도 꾸지 못했다. 수술을 받고 최대 몸무게를 찍었을 때 낯선 호빵이 거울 앞에서 나라고 우기는 중이었고 그래도 정겹노라 위로하며 하루하루 보냈다.

몸도 문제였지만, 가정경제는 말도 못 하게 망가지고 있었다. 2020년부터 22년까지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은 우리 집은 비상금으로 저축한 통장을 깼고, 그것으로 자린고비처럼 아껴 쓰면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이런 경험은 당시 누구나 겪는 일이었으니 그렇다 해도 몸까지 상하니 마음은 더 깊이 병들어 가고 있었다. 그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자니 웃음이 사라지고 주름이 늘면서 흰머리가 났다.

나이 듦이란, 한순간에 온다. 개인사에도 아픔이 넘치고 있었기에 이 시간은 흐린 날 아래 검은 바닷물이 출렁이던 순간들이었다.


과거는 과거다. 언제까지 흐린 날의 검은 바닷물로 마인드 셋 할 수 없지 않은가?

첫 주 다이어트 3일 동안 나는 아래와 같은 음식을 먹었다.


단백질 음료 3회, 두부와 찐 가지, 당근, 버섯, 알배추.

찐 두부와 당근 버섯 가지 알배추는 소금을 두르지 않은 들기름에 찍어 먹고 흰 설탕, 흰 밀가루, 흰밥, 흰 소금, 흰 조미료, 술, 커피 등을 제외.

신선한 야채, 본연의 색이 흰색인 것을 빼놓고는 이 흰색의 가공품은 제외.


가끔 공깃밥을 밖에서 먹을 때가 있었지만. 반을 덜어 먹었다. 그러나 일단 가공된 흰색은 중독을 일으킨다 생각하고 멀리했다. 이 흰색의 가공품들은 한번 입에 대면 끊기 어렵고, 가짜 배고픔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갑자기 단 것도, 짠 것도 모두 끊는 것은 무척 낯설고 힘든 경험이다. 무엇보다도 콩 비린내 가득한 단백질을 싫어하는 내 몸은 백색 식품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딱 3일 해보고, 효과 없으면 그만 두자.'


3일 동안 첫날은 느리게 걸었다. 이틀째 걷고 뛰기를 하고 3일 되는 날 뛰기 걷기로 운동 방법을 바꿨다. 그렇게 딱 3일을 하니 정확히 4킬로가 빠졌다.


"오! 빠진다!"


물론 수분까지 빠진 것이니 즐거워할 일은 아니았지만 단 3일 동안 흰색과 멀리한 결과는 놀라웠다. 이대로 계속하면 더 빠지겠지만, 그러다가 폭식증으로 돌아설까 봐 방법을 달리하기로 결심하고는 효과가 있었다는 다이어트 방법을 검색했다. 이때 나는 몇 가지 철칙을 세웠다.


먼저, 다이어트 보조제는 먹지 않기.

둘째, 집에서도 밖에서도 큰 비용 들이지 않고 운동하는 방법 찾기

셋째, 무작정 굶지 않기

넷째,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식이섬유 중심으로 식단 짜기

다섯째, 저염, 저당 소스 만들기


이 다섯 가지 원칙을 세운 후 다이어트가 성공한 다음 입을 청바지를 하나 샀다.


"그래, 이번에 꼭 성공해서 한 사이즈 줄어든 이 청바지를 입어보자."


그때 산 청바지는 안타깝게도 현재 크다.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렇게까지 내가 지속적으로 식이를 조절하고 운동하게 될 줄은 그땐 미처 몰랐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냥 리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