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을 꾸준히 '쓰며' 보낸 내가 찾은 '글을 쓰는 이유'
동굴 벽화,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지금으로부터 30,000년 전인 구석기 시대에 (지금까지 발견된 것으로는) 최초의 동굴 벽화가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요. 벽화에는 동물의 종류, 사냥할 때 주고받는 수신호들이 그려져 있다고 합니다. 이후 이 그림들은 간단한 형상을 표현한 그림문자가 되고, 이를 더 간략화하여 제법 다양한 단어를 표현하게 되면서 법전까지도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발전 속에서 그들은 무엇을 남기고 싶었을까요?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기준 중 하나는 언어를 이용해서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이에요. 생각은 추상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요. 이를 다른 이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매개체가 필요해요. 몸으로, 선으로, 음의 가락으로. 그리고 누군가는 언어로 이를 전달하죠. 그 중에서도 말보다 글은 더 많은 과정을 요하는 것 같아요. 말은 더듬더듬해도 곧잘 이어지고, 함께하는 공간과 그날의 조명, 습도, 온도가 그 사이에 스며들어요. 완벽하지 않아도 왠지 그 자체로 괜찮은 것 같은 느낌은 그 때문일 거예요. 하지만 글은 좀 달라요. 일단 글쓴이부터도 글을 적어놓고 한 번 다시 보잖아요? 그럼 왠지 이상하게 느껴지고, 더 좋은 말이 있을 것만 같고 그렇단 말이에요. 사실은 문법에 맞춰 쓰는 것도 겨우 하면서 말이에요. 그래서 다들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이유는 뭘까요? 제가 2024년 들어 새롭게 들인 습관은 바로 기록이에요. 차마 글쓰기라고 하기 부끄러워 저 나름대로는 그것을 ‘기록’이라 부르고 있는데요. 하루 24시간의 작은 부분을 할애해서 그날 정해진 질문에 답을 써 내려간답니다. 하루를 보내면서 많은 질문을 받잖아요. 많은 질문에 답을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해 묻는 말은 몇 개나 될까요? 생각하려면 아마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하루 종일 쏟아진 질문들을 해결하느라 일과를 마치고는 잠자리에 들기 바쁘니까요.
‘생존 운동’을 하신다는 분들이 많아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버텨내려면 기본 체력은 필수죠. 그래서 퇴근 후에도 지친 몸을 이끌고 헬스, 수영, 필라테스를 하러 발길을 돌리잖아요. 근데 생각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혼란하다 혼란한 현대사회에서 자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려면 자기 삶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열심히는 살고 있지만 어쩐지 즐겁지 않을 때, 난 분명 어른인데 아직도 이 길이 맞는지 고민스러울 때, 중요한 선택 앞에서 자꾸만 머뭇거리고 있을 때. 아버지가 보고 계시면 정답을 알려주신다면 참 좋을 텐데, 왠지 나의 외침이 자꾸 고요 속의 외침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 그때 필요한 게 나의 마음의 소리죠.
결국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밖에 없어요. 영영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문제때문에 마음이 답답할 때 어떻게 하시나요? 운동을 할 수도 있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풀어낼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문제가 풀리던가요? 아닐 거예요. 왜냐면 문제는 결국 그 자리에 그대로 있거든요. 물론 스트레스를 풀고 새로운 힘을 얻어서 문제를 해결할 용기가 생기더라도 결국 방법은 내 안에 있어요. 답답하고 캄캄하고 무엇보다도 나만이 들여다볼 수 있는 이곳으로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글을 써야 합니다. 이곳을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생각이고, 이곳에서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은 기록이에요. 당신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죠? 당신에게 가장 큰 기쁨을 줄 수 있는 일, 또 당신이 가장 참기 어려운 일은요? 나는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잘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를 알아가던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그때 아마 당신은 수많은 질문들을 주고받았을 거예요. 아주 사소한 것도 모두 알고 싶어서요. 자신과도 그런 대화를 나눠보세요. 내가 아주 사랑하는 존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요. 이런 시간은 자연스럽게 오지 않아요. 그래서 하루를 조금 떼어내서 세상 가장 사랑스러운 나에게 질문을 건네보세요. 마음의 근육을 키운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질문을 하며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보세요. 멋진 문장이 아니라도 좋아요. 글은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생각 속에서 당신이 어디쯤 왔는지 알려주는 지도가 될 거예요. 장담하건대, 어느 날은 아무렇게나 적어놓은 글 속에서 멋짐을 발견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게 더 짜릿하지 않나요?
그런 작은 시간들은 모이고 모여 당신을 만들어요. 하루 여기저기에 놓여있던 즐거움을 발견한다거나, 이 길에 서 있는 이유를 깨닫는다거나, 혹은 기꺼운 마음으로 다른 길로 향하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수도 있겠죠. 이것들은 당신의 삶의 규칙이 돼요. 당신이 지금 적는 기록들은 미래의 혹은 현재의 당신이 나중에 어떤 상황에 부닥쳤을 때, 어떤 감정에 휩싸였을 때, 어떻게 하면 더 지혜롭게 해쳐나갈 수 있을지 알려주는 지침서가 될 거예요.
글을 쓴다는 것, 쉽지 않아도 꼭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당신의 머리가 복잡하면 복잡할수록요. 적어도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그래요. 당신은 어떤 이유에서 글을 쓰게 될까요? 다만 저는 당신이 그 속에서 자신을 밝힐 빛을 발견하는 기쁨을 얻을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