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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 후선 Dec 19. 2024

뭣이 중헌디? 유전인겨? 환경인겨?

 ‘유전이 중요한가? 환경이 중요한가?’에 대한 논란에서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20세기 초중, 우생학이 주목받던 때는 유전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지만, 후성유전학이 주목받는 지금은 환경에 좀 더 힘이 실리고 있다. 

 성격연구에 따르면, 성격은 50%는 유전으로 결정되고 나머지 50%는 유년기 양육환경에 의해 형성된다. 유전적 기질은 성격의 기본 틀을 제시하고 환경은 이러한 틀을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데 영향을 미친다.      


 보리가 한창인 6월 말, 가족들은 모두 보리 베느라 들에 있었고, 엄마는 혼자 보리베다 말고 잠깐 집에 들러 우리 둘을 낳았다. 엄마는 이미 다섯 번의 산통을 겪은 경험이 있었기에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언니를 낳았다. 탯줄을 끊고 뒷정리를 하는 도중 또다시 산통이 찾아왔고 마침내 내가 태어났다. 

 당시 우리 동네엔 산부인과나 병원이 없었기에 쌍둥이라는 걸 알지 못한 엄마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큰오빠가 큰집 양자로 올려져 있기에 아들이 한 명뿐인 우리 집에선 모두 아들이길 원했다. 그런데 딸이 둘씩이나 태어났으니 난감한 노릇이었다.

 나는 언니보다 체격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약했다. 엄마는 덩치가 정상보다 작은 나를 바구니에 넣어 벽장에 둔 후, 언니만 안고 누워 있었다. 70년대 가난한 농촌에서는 방에 가구라곤 없었기에 감출 수 있는 곳은 벽장뿐 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엄마는 순간이나마 민망한 상황을 피하고 싶었나 보다. 

 점심시간이 이미 한참 지났음에도 엄마가 밭에 오지 않자, 결국 가족들은 집에 가서 점심을 먹어야 했다. 그렇게 방에서 식사하던 중 벽장에서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상해서 벽장문을 열어보니 바싹 마른 내가 놓여 있었다.     

 

 나와 언니는 일란성 쌍둥이 자매기에, 유전적인 DNA는 같다. 하지만 타고난 성격은 달랐다. 언니는 민감하고 까칠한 편이었고 나는 무던하고 순한 편이었다. 이런 나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언니한테 치였다. 그 결과, 언니는 정상 체중으로 태어났지만, 나는 많이 왜소하게 태어났다.

 이런 언니와 나의 성격은 어린 시절 내내 영향을 미쳤다. 가난한 시골에서 엄마는 집안일과 농사일 그리고 우리 육 남매를 돌보느라 잘 먹지도 쉬지도 못했기에 젖이 늘 부족했다. 그래서 모자라는 젖을 채우기 위해 쌀뜨물을 먹여야만 했다. 까칠한 언니는 젖이 아니면 먹질 않았지만, 무던한 나는 쌀뜨물을 줘도 잘 먹었다. 그러다 보니 쌀뜨물은 항상 나의 몫이었다. 

 나는 돌 전에 늘 아팠다. 의학 기술이 부족했던 그 시절, 목에 난 혹으로 세 번이나 수술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 세 번의 수술과 쌀뜨물로 배를 불렸으니 늘 기운 없이 늘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유년기의 결과 중 하나가 지금의 납작한 뒤통수다. 

 우리 둘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면 나의 종아리는 언니의 반쪽이다. 그리고 언니의 퉁퉁한 사각 턱과는 다르게 나의 턱은 뾰족하다. 지금이야 마른 아이가 예쁘다지만 그때만 해도 우량아가 최고 인기였으니 마른 체격이 뭐가 좋았겠는가? 그러나 성장한 지금은 키를 비롯한 몸무게와 다른 대부분의 외형적 특징에서 차이가 없다. 아니 같다는 게 정답에 가깝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유년기의 좋은 영양 섭취와 환경이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데 의문을 가진다.      


 이런 얘기를 하면 큰언니도 한목소리를 보탠다. 큰언니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첫째는 예민하여 입이 짧았다. 늘 먹는데 소심하여 언니의 속을 끓였다. 반면, 둘째는 무던하여 먹는 게 없어서 못 먹는 대단한 먹보였다. 첫째는 오른쪽 발뼈가 조금 삐뚤게 태어났다. 언니는 갓 태어난 첫째와 그때부터 첫째가 초등학생 때까지 강릉에 있는 육촌 오빠네 병원엘 다녔다. 지금이야 대구에서 강릉은 쉬운 거리지만, 그땐 버스를 몇 번씩이나 갈아타며 가야 하는 힘든 거리였다. 첫째는 병원엘 다니는 내내 뼈를 교정하는 불편한 신발을 신었다. 이런 오랜 노력으로 첫째의 발뼈는 바로 잡혔지만 까칠한 성격 탓에 어릴 적 내내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 첫째 조카의 키는 187cm이고, 둘째 조카는 170cm이다.

 환경은 타고난 그 세대에서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지만,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서는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후세로 가면서 체격이 커지는 것을 볼때. 즉 그 세대에서 영향을 모아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서 유전되나 보다. 그러면서 1세대씩 1세대씩 넘어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커가나 보다.   

  

 우리 주위를 가만히 둘러보면 어떤 것은 유전이 중요하고 어떤 것은 환경이 더 중요한 것 같다.

 혈액형이나 외형은 유전이 더 중요하다. 우리의 타고난 혈액형, 작은 키, 넓은 체격이 살면서 바뀌진 않는것을 볼때. 반면 피부나 장기들은 환경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좋은 피부나 장기를 유전 받았지만 잘 관리하지 못하면 망가지는 것을 볼때. 살아온 환경이나 습관에 따라 늙어서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성격은 환경이 중요한가? 유전이 중요한가? 

 행동 유전학에서는 성격이 유전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하고, 환경주의적 관점에서는 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내 경험에 따르면, 유전이 환경보다 더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만약 누군가가 성격은 "유전이 더 중요한겨? 환경이 더 중요한겨?" 라고 묻는다면 나는 "유전이 더 중요하지" 라고 대답 대답할 것이다. 아니 "성격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유전이 더 중요하지." 라고 대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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