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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 후선 Aug 17. 2024

나비효과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개를 한 번 퍼덕인 것이 대기에 영향을 주고 이 영향이 시간이 지날수록 증폭되어 미국을 강타하는 토네이도가 된다. 이 말에서처럼 작은 사건 하나에서 엄청난 결과가 나온다는 걸 ‘나비효과’라 한다. 나비효과는 혼돈 이론(Chaos Theory)의 중요한 개념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또한, 복잡한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한다.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 나에게 몇 가지 큰 성과가 있었다. 그 원인을 찾아 따라 가보니 의외로 작은 선택이 출발점이었다. 


어쩌다 모 웨딩홀에 입점하게 됐다. 웨딩홀 대표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에 근무하는 팀장을 소개해 주었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대구지부에서는 민관 협력으로 출소한 사람들을 돕고 있었다. 매년 연말에 후원금 사용에 관한 결산보고를 했는데, 이 행사가 이 기관에서 제일 비중을 차지하는 행사였다. 이때 형편이 어려워 결혼식을 치르지 못한 출소자를 대상으로 무료결혼이벤트를 함께 진행하였는데, 나는 웨딩숍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그와의 인연으로 무료결혼이벤트 봉사를 맡아 하게 됐다.     

매년 9월이면 팀장은 전화를 걸어 이벤트가 언제 열리고 신랑신부는 몇 쌍이며, 언제쯤 드레스를 보러 갈건 지를 알려 왔다.


그 해도 어김없이 9월에 전화가 왔다. 

“아이고 원장님! 잘 계시죠, 요번엔 11월 17일로 잡혔심더. 조만간 뵈러 갈게요. 장소는 작년에 했던 장소랑 같심더”

“팀장님! 죄송해요. 이젠 못할 것 같아요. 제가 웨딩홀 대표님이랑 임대보증금 소송 중인데 장소가 거기라면 좀 힘들겠어요. 지금 다른 업체가 입점해 있으니 거기 한 번 연락해보세요”

통화가 끝난 며칠 뒤 밤늦게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아이고 원장님! 죽겠심더. 거기서 드레스가 없다면서 안된다고 합니더. 웨딩숍에 드레스 없다는 게 말이 되는교? 우짜면 좋겠는교? ”

얼마나 힘들면 일 년에 일 있을 때 한두 번 아니면 통화하는 사이도 아닌데 이렇게 밤늦게 전화를 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짠했다.

“팀장님! 구하다 구하다 정 못 구하면 제가 할게요. 팀장님도 내 사정 잘 아시니 다른데 좀 더 찾아보세요”

그러고 며칠 뒤 다시 전화를 받았다. 다른 웨딩숍을 찾지 못했다고. 그렇게 새롭게 인연이 되어 나는 몇 년을 더 합동결혼식을 맡아 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해 너무 마음이 가는 노년의 부부팀을 만났다. 우리 아부지 같은 지적이고 품위 있는 인상을 한 신랑과 그 인상에 걸맞는 온화하고 지적인 인상의 신부가 다른 젊은 신랑 신부들과 함께 드레스를 고르러 왔다. 외적인 이미지처럼 말씨도 어찌나 고급스러운지 자꾸만 마음이 갔다. 모두 드레스를 고르고 간 뒤 조금 망설이다 팀장에게 전화했다.

“팀장님! 물어봐도 되나 모르겠어요. 그래도 하도 궁금해서요. 이런 거 처음 물어보잖아요. 혹시 인상 좋은 그 신랑신부님 범죄명이 뭐예요?”하며 숨죽이고 기다리는데, 두 분 모두 살인이라 한다. 장기 복역 중에 펜팔로 만나셨고, 그러다 보니 늦게 결혼하는 것이란다. 


이때 가진 궁금증과 의외의 답변이 내가 성격에 관해 연구하게 된 계기가 됐다.  나는 논문을 준비하면서 그때 기억이 떠올라 논문 주제로 성격을 정했다. 마침 그때 대학원 우리 기수 대표님이 교도소 소장으로 계셨기에 큰 어려움 없이 설문조사 할 수 있겠다 싶어 전화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NO”였다. 재소자를 일반인들이 만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재소자의 인권에 무게가 실리면서 국가권익을 위한 조사가 아니면 설문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잘 될 거라는 기대감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한 방에 날아가 버렸다. 그때 그 막막한 심정 중에 불현듯 팀장이 생각났다. 포기할 땐 하더라도 일단 물어나 보자 싶어 팀장에게 전화했다. 나는 안 될거라 생각하였기에 뒷말을 흐렸다.

“팀장님! 잘 계시죠? 다름이 아니라 성격에 대해 논문을 쓰려고 하는데요. 음· · · 혹시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하는 걸 좀 도와주실 수 있나 해~서~요~” 

그런데 의외의 답이 왔다.

“아이고 원장님! 당근 해 드려야지요. 내 힘들 때 원장님이 도와주셨는데요. 어떻게 도우면 됩니꺼?”     

그렇게 그 팀장의 도움으로 구하기 힘든 데이터라는 아주 후한 평을 받으며 무사히 석사, 박사학위를 마쳤다. 그리고 그 뒤로도 학술논문 몇 편을 더 낼 수 있었다. 지금은 그 연구들을 바탕으로 강연하고 글을 쓰고 있다. 


지금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 삶의 큰 패턴을 바꾼 일들은 의외로, 그 시작점은 항상 작은 선택이었다. 

어쩌다 무심코 선택한 작은 일들이 삶에 기회가 되어 큰 행운을 가져다줄 때가 많았다. 

‘나비효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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