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존감이 인기 있는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심리연구를 찾다 보면 자존감에 대한 논문들이 참으로 많다. 연구자뿐만 아니라 유튜브에서도 자존감에 관한 영상이 매우 많다. 가만히 보면 자존감을 자존심과 혼동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미술 심리수업 때 있었던 이야기다.
호영이가 수업하기를 싫어하길래. “재미없어? 그럼 하지 말까?”하니 “네”하고 대답한다.
“수업하지 않으면 마칠 때까지 다른 아무것도 하면 안 되는데 그럴래?”하니 “네”하고 대답한다.
그러고는 둘 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약속하였기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나서 엄마한테 오늘 이러한 일로 수업을 안 했다고 말씀드리니 깜짝 놀란다. 놀란 이유를 시간이 조금 지나 알게 됐다. 아이의 잘못된 일을 아이 앞에서 얘기하면 아이의 자존감이 낮아지기에 아이 앞에서 안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이를 나무라는 것도 아니고, 흉을 보는 것도 아니고, 사실 있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주었는데 엄마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호영이 엄마는 자존심을 자존감이라 생각하는구나!
자존감은
내가 나를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존재 자체로 소중하고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자존감이 높다고 평가되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삶에 있어서 가치 있고 보람 있다고 생각하며, 원만한 사회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데,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기 자신이 가치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여 스스로를 학대하고 열등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니까 자존감은 높을수록 좋다.
자존심은
타인에게 존중받기 위해 남에게 굽힘 없이 스스로 높은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이다. 지나치게 자존심이 세면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려다 아집을 내세울 수 있고 감정에 휩싸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자존심이 지나치게 강하면 독이 된다.
즉, 자존심은 다른 사람이 나를 잘났다고 할 땐 기분 좋고, 못났다고 할 땐 기분 나쁜 것이고, 자존감은 남이 나를 잘 났다고 하든 못났다고 하든 동요되지 않는 것이다.
자존심이 높은 사람은 본인이 남들보다 우위에 있을 때는 당당하지만 낮은 위치에 있을 땐 위축된다. 자존감이 낮은데 자존심이 높은 사람은 남을 끌어 내려 내가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자존감도 높고 자존심도 높은 사람은 남을 도와 내가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고등학교 체력장 검사 때의 일이다. 오래 매달리기 검사에서 두 명씩 철봉에 매달리면 선생님은 옆에서 초를 재기 시작했다. 여자아이들이 아령을 들어본 것도 아니고 팔굽혀보기를 해본 것도 아니다 보니 매달리자마자 가을바람에 낙엽 떨어지듯 툭툭 떨어졌다. 내 차례가 왔다. 나는 매달리면서 '옆 친구 떨어지면 나도 떨어져야지' 하고는 매달렸다. 그런데 하필이면 독종을 만났다. 그 많은 추풍낙엽 같은 애들 다 두고 왜 그런 독한 애랑 같이 붙었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그 친구도 나랑 같은 마음을 먹고 매달렸는지 둘 다 떨어지질 않았다. 구경하는 친구들은 재밌다고 박수치고, 선생님은 "뭐 이런 애들이 있지?" 하시며 놀라 하시고, 매달린 우리 둘은 팔이 발발 떨리고, 6·25 난리는 난리도 아니었다. 나는 그래도 한 번 먹은 마음이 있는데 싶어 팔로 버티던 것을 턱을 걸었다. 그리고 팔힘과, 턱힘과, 목힘을 모두 모아 버텼다. 그렇게 우리 둘은 만점 시간이 지나서야 내려왔다. 내려오고 나니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이러다가 평생 말 못 하는 건 아닌가 싶어 어찌나 겁이 났던지. 꼴란 자존심 지키려다 큰일 날 뻔했다.
괜한 자존심 내세우다 망하는 케이스를 우린 주위에서도 자주 본다. 아이의 성적이 엄마의 자존심이고, 남편의 지위나 경제력이 아내의 자존심이고, 좋은 차, 좋은 집 이런 것들이 본인의 자존심이 되니 독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자존심은 자존감과 달리 높고 낮음, 좋고 나쁜 것에서 좌우된다.
우리 앞집에 다운증후군 남자아이가 살고 있는데, 늘 밝고 기분이 좋다. 그 아이는 나를 만나면 늘 “아주머니 안녕하세요?”하며 싱글벙글이다. 그럴 때마다 매번 드는 생각이 '이 아이는 자존감이 참 높은 아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