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맞는 삶

by 겨울색하늘

이사를 했다. 원래 살던 곳에서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 정도를 가면 되는 곳이라, 실질적으로 변한 건 없지만, 어쨌든 식사를 하는 공간, 한 숨 돌리며 걷는 산책길의 풍경,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에 마주치는 천장의 무늬 패턴이 바뀌었다는 건 확실히 '이동했다'라는 실감이 들게끔 하는 것 같다.

새로 이사 온 곳에는 바로 길 건너에 고등학교와 초등학교, 중학교들이 있어서, 산책을 하다보면 밤늦은 시간까지 거리에 학생들을 제법 많이 마주치게 된다. 전에 살던 곳은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드신 분들이 많아 평온한 분위기였다면, 여기는 역동적이고 생기가 넘친다고 해야할까, 고요하고 적막한 분위기 대신 활기찬 분위기의 또다른 매력으로 가득한 새로운 밤산책.

습관적으로 귀에 꽃은 이어폰을 빼서 돌돌 말아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는, 주변 학생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천천히 걸었다. 허공에 이리저리 어떤 그래프의 모양을 손가락으로 휘저으며 열띤 토론을 벌이는 걸 보니 수학문제에 대한 답이 갈린 모양이다. 이쯤이면 중간고사 기간이구나, 하고는 시대가 변했지만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하나도 변한 게 없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고등학교를 졸업한지도 자그마치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오래 되었다고 긍정해야 할지, 그다지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라고 부정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기억은 아직까지 선명하게 남아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시험을 치르고 정답도 나오기 전에 삼삼오오 모여 답을 맞춰보고 갈린 정답의 서로의 근거를 들이밀며 열띤 토론을 벌이던 시절. 며칠만 기다리면 결과가 나온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던, 그다지 의미 없는 갑론을박이 어째서 그렇게 재미있었던지. 앞서 걸어가는 학생 세 명의 모습에서 오래전의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으로는 왜그렇게 재미없는 이야기에 열을 올렸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회상해보면 당시에는 실로 재미있었다. 설령 설득 당하더라도 머리 속 어딘가의 지식 주머니가 풍성하게 채워지는 걸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고, 지식으로써 실력이 비슷한 누군가를 설득했을 때의 그 승리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뿌듯함을 가져다 주었다. 아아──, 물론 이 이야기는 오로지 단 하나의 정답만 존재하는 수학과 과학에 한정한 것이긴 하지만. 다른 과목에 대해서는 글쎄──, 토론이 별 의미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 이것도 저것도 관점에 따라 정답이 될 수 있다는 건, 내가 맞다는 증명은 그다지 어렵지 않으나, 너가 틀렸다는 증명을 관점이 다르다는 한 마디로 방어할 수 있었으니까. 요컨대 ‘치사한 과목’으로 치부해버리고는 그 순간부터 흥미를 느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대학생 시절은 한층 더 진화해서, 스스로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할 수 있고 전공을 명확하게 선택하고서, 흥미로운 분야에는 더 어렵고 심오한 문제들로 가득해 생각의 여지가 넓어졌고, 귀찮은 것들은 전부 교양과목 내지는 그것조차 귀찮고 재미없어서 전공과 관련된 것으로 채워 넣었다. 대학생이 되고는 누구의 정답이 맞는지의 토론보다는 모두가 답에 도달하지 못한 어떤 문제를 두고 머리를 맞대서 답에 도달하고자 했던 탐구적인 대화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고등학생 시절처럼 공격적인 토론보다는 의견의 공유, 관점의 공유가 주를 이루었고 더 나아가 진로와 삶의 방향에 대한 부분까지도 다양한 생각을 나누었다.


걸어가는 방향이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시절까지는 목표 대학이라든지, 성적과 등수라는 지표가 중요했고 대학생 시절에는 졸업 후의 진로가, 그 이후에 결혼이라던가 재테크라던가 하는 생소한 분야에 대한 우리 세대의 보편적인 생각과 관점이 중요했다. 그렇다고 주변 모두와 그런 이야기를 공유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스스로와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지인들과는 끊임없이 이런 교류를 해왔다.

생각해보면 그 나이에 너무나 당연한 대화였다. 누가 들어도 우리의 나이와 상태를 추측할 수 있는 그런 대화. 그리고 그건 나이에 걸맞는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였다. 의식하지 않아도 지극히 학생다웠다. 그건 굉장히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글쎄──, 사회인스러운 삶은 과연 어떤 걸까. 서른이라는 나이에 걸맞는 삶이라는 건, 평범하게 출퇴근을 반복하고 부동산 소식에 귀를 쫑끗하며 가방은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무거워진 지금의 삶은, 서른다운 건가, 사회인스럽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아직 학생 끝자락을 벗어던지지 못한 걸까.

삶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변화무쌍한데, 이 나이에 맞는 삶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도 들지만, 역시 너무 앞서가는 삶도, 너무 뒤쳐지는 삶도 외로울 것 같기도 하다.

인생이 마라톤이라고 한다면, 혼자 뛰는 마라톤만큼 재미없는 게 어디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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