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에세이에 대하여 #1.

by 겨울색하늘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고 있자면 '아아──, 나도 이렇게 담백한 글을 쓰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막상 시도해보면 어딘지 모르게 문체라던가 태도라던가 쓸데없이 딱딱하고 진지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어중간하게 닮아간다고 해야할까, 어쩌면 삽화같은 게 전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아쉽게도 아는 지인 중에는 삽화를 그려주거나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야 물론 잔디밭에서 바늘을 기필코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찾아보면,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적어도 생각나는 사람 중에 그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사람이 한 명 쯤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도 삽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하며 글을 내미는 것이 부끄러우니, 사실 삽화가 없어서라는 건 변명이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는 스스로 그림을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다. 마침 지난 번에 구입해놓은 태블릿도 있기도 하고, 사실 마음의 준비를 제외하고 모든 게 완벽히 준비되어있었다. 그러나 몇 번 끄적여보니 이건 도저히 삽화로 쓸 수 있는 수준이 아닐 정도의 낙서가 남아있었다. 그나마 그릴 수 있는 그림이라고는 도면같은 것밖에 없기 때문에, 그걸 삽화로 넣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것이 삽화로 들어가는 글이란, 저기 어딘가의 기계공학 전공서적 만큼이나 무거워질게 안 봐도 비디오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글에 있어서 적절한 삽화의 존재는 꽤나 중요한 것 같다고 요즘은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래서인지 하루키의 에세이에 삽화를 그리고 있는 미즈마루의 대충 그린 것 같은 그림을 보고는,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어림도 없었다는 이야기. 역시 화가는 다르네, 새삼 감탄하고 말았다.

그래서 오늘로 그림을 배워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막상 퇴근 후 지친 몸을 의자에 반쯤 눕힌 채 하얀 도화지를 마주하고 있으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한다. 확실히 학생 때와는 다르다고 느끼고 있다. 그 때는 뭐든 '심심한데 일단 해볼까?'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일단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조금씩이라도 해봐야 겠다. 앞으로 종종 말도 안되는 낙서가 보이더라도 이해해주세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이에 맞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