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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에 대하여 #2.

by 겨울색하늘

지난 글에서 에세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두 번째 이야기. 생각해보니 삽화에 대해서만 잔뜩 이야기하고 정작 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못했던 것 같다. 담백한 글을 지향한다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담백한 글이라는 것은 한 마디로 멈춰야할 때 멈출 수 있는 글을 말한다.

글을 쓰는 중에 어느 순간 너무 깊게 빠져들어 쉬지 않고 펜을 움직이다보면, ‘아차, 이건 위험할지도.’ 라며 펜을 내려놓고 지우개를 집어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치 달리기 시작부터 페이스를 한껏 끌어올렸다가 문득 혼자만 숨을 헐떡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아, 그러고보니 이거 마라톤이었지’ 라고 이마를 탁 때리는 기분일까. 물론 실제로 마라톤에서 이런 경우는 좀처럼 없겠지만, 글에서만큼은 본인이 어떤 글을 어느 정도의 깊이로 쓰고 있었는지 도중에 잊어버리는 경우가 꽤 있는 것 같다. 뭐, 내가 미숙한 탓도 있겠지만, 여러 작가의 에세이를 읽어도 ‘이건 좀 위험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적지 않은 걸 보면 그다지 특별한 문제도 아닌 것 같다.

이런 문제를 두고 예전에 어느 작가가 칼로 부드러운 두부를 자르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요약하자면, 너무 깊게 찔러 넣어 지나치게 힘을 주면 두부가 뭉개질 수 있으니 적당한 깊이와 힘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그렇군.’ 하고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두부를 그 정도로 세심하게 잘라본 적이 없으니 실제로 그런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런 면에서 알랭 드 보통이나 무라카미 하루키, 파울로 코엘료같은 작가들은 정도를 꽤나 잘 조절한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작가들의 글은 장르를 불문하고 독자로 하여금 생각이 침범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끔 하지 않는다. 달리 보면 그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뚜렷한 결론도 없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좋은 글이라는 건 결론을 내려주기보단 사색의 심지에 살짝 불을 붙이고 슬며시 도망을 쳐버리는 글이 아닐까.

그러나 막상 에세이를 쓰고 있자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어째서인지 타인에게 어떤 식으로 읽히게 될지 걱정하는 모습이 스스로도 굉장히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한다. 마치 숨겨둔 것을 누군가에게 들켜서 읽히게 될 것을 염두에 둔 비밀일기를 쓰는 것 같은 아이러니와 비슷하다.

아아──, 역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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