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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색하늘 Oct 08. 2022

번역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현대 문학은 거의 손대지 않기 때문에(물론 몇몇 선호하는 작가가 있지만, 박완서 님을 제외하고는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이기에) 번역된 책들을 읽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신작 소식을 들어도, 책을 어느 출판사에서 누군가가 번역해서 출간해줄 때까지 기다리면서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을 겪는 건 아주 흔한 일이다. 그나마 유명 작가들의 경우, 출간되는 동시에 번역이 빠르게 이루어지는 편이라 조금 나은 편이지만, 아직 유명작가가 아니거나, 작가가 유명하더라도 작품 자체가 마이너한 경우에는 번역이 되기까지 한참이 걸리거나 번역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으니, 사실 이쯤되면 당연히 다른 언어를 배울 생각을 하게 된다.


   답답한 마음에, 원서로 읽을 수 있다면 더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새로운 언어를 시작해 독서가 무난할 정도의 경지까지 올라간다는 건,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영어는 좋든 싫든 어릴 적부터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종종 알랭 드 보통이나 줄리언 반스같은 영어권의 작가들의 영서는 느리게 나마 읽곤 하지만, 다른 언어의 원서는 몇 번 시도해봤어도 내 실력으로는 ‘읽는다’라는 수준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그래봐야 영어를 빼고 시도해 본건 일본어 정도밖에 없지만요)

   그래서 번역이라는 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단순히 하나의 언어를 완전히 다른 언어로 글자를 바꾸는 걸 말하는 것이 아니다. 느낌을 잃어버리지 않은 채로 하나의 언어에서 완전히 다른 언어로 갈아탄다는 의미로, 비유하자면 예술적 느낌을 유지한 채, 고흐를 드뷔시로 바꾸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물론 이렇게 장르를 바꾸는 정도로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조금 민망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어로의 번역은 특히 어렵지 않을까. 예를 들면, 독일어를 영어로, 혹은 스페인어를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일은,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라틴어를 근간으로 하고 있으니 어순이라던가, 단어라든가 하는 부분에서 난이도가 비교적 낮은 반면, 영어나 독일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정말로 언어적인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니, 난이도 역시 높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시 돌아와서, 언젠가 진지하게 번역을 배워보는 것도 생각했던 적이 있지만, ‘해석’정도라면 모를까 번역을 하기엔, 내 언어적인 센스와 역량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고 생각해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다른 언어 공부를 하게 되었다.(아무리 센스가 없어도 교양 수준은 해야 하는 거니까요) 게다가 어차피 업무에서도,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도 다양한 언어를 알고 있다는 건 꽤나 큰 장점이기도 하고.
   반대로 생각해보면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것도 역시 대단하다고 할까. 얼마 전, 맨부커상을 수상한 '채식주의자'의 경우, 번역이라는 건, 언어적인 스킬보다도 글에 공감하는 능력이 더 큰 것 같기도 하다. 번역자가 공감하지 못해서야, 번역된 글이 원문의 느낌을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한국어에는 이래저래 영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으니까, 그런 부분들을 장황하지 않게, 가독성 좋은 문장으로 바꾸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이러니 저러니 어렵다고 말하고 있으면서도, 역시 번역은 한 번 쯤 도전해보고 싶달까. 좋아하는 작가의 책의 출간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원서로 읽으며 내가 생각하고 이해한 문장으로 하나씩 바꿔 나간다는 건, 독후감을 쓰는 것보다도 더 느낌을 잘 기록해둘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뭐──, 언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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