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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색하늘 Oct 09. 2022

두 접시 낭독회

  아름드리 나무 아래 짙은 그늘이 지고, 그 아래 잠깐 앉아 마음 놓고 쉬기에도 신경쓰이는 것들이 너무 많아, 한동안 마음편히 잔디 위에 앉아 습윤한 여름 바람을 만끽하는 것조차 망설였었다. 

그리고 어느 날, 출근길에 얼핏 들었던 일기예보의 캐스터는 30도를 웃도는 날씨를 상큼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렇게 무더위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본격적인 여름이 되어서야 정신적인 여유를 조금씩 찾을 수 있었다.


  흘러내리는 땀방울만큼, 한 번 엉망진창이 되었던 정신은 반듯하게 가라앉아, 어딘가의 온천에서 보았던 따뜻한 물 속에서 가지런히 반짝였던 타일처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수필 속, 한 줄로 가지런히 늘어서 있는 글자를 쫓는 시선이 조급함에 생각을 앞서가지 않는다. 오랜만의 밤산책, 그 발걸음은 생각을 정리하는 속도보다 느리고 차분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앞으로 나아가 마침표를 찍고 기지개를 켜며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을 때는 정확히 반환점을 돌고 있었다.


  음악을 듣는 대신, 바쁜 업무로 인해 참석할 수 없었던 지난 번 소모임의 '두 접시 낭독회'의 녹음을 들었다. 


  "아아──, 한여름의 무더위에도 녹지 않는 얼음이어라. 한겨울의 강추위에도 식지 않는 연탄이어라. 하물며 이렇게 부드럽고 상냥한 미풍에 조차 흔들리는 내가 수없이 사계절을 넘겨온 것은, 얼음도, 연탄도 아니기 때문에..."


  노래 한 곡 정도의 낭독이 끝나고 이어지는 또다른 낭독. 엇, 많이 들어본 배경음인데, 하며 기억나지 않는 제목을 억지로 떠올리다가 지나가 버린 다음 낭독까지.

  고민은 모두 비슷하다. 낭독인지 푸념인지 모를 말들이 오가고, 분명히 후야제에도 작년과 비슷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별히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잔잔한 일상 속에서 신선한 자극을 찾는 것까지.


  아주 느닷없이, 많은 글감이 머리 속에 유성우처럼 쏴아──, 하고는 쏟아졌는데, 메모지도 펜도 가지고 있지 않아 다 주워담지 못했다.

  쓰고 있지 않고 있어도 쓰고 있는 순간과, 쓰고 있지만 쓰고 있지 않은 순간이 뒤섞인 일상을 새삼 깨달으면서도 매번 펜과 노트를 깜빡하는 건, 역시 '쓰는 사람'으로써는 실격인건가, 하고 실소를 금치 못한 채 생각보다 멀리 걸어와 버린 산책길을 다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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