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9개월 된 딸과 침대에 누워 그림자 극장을 보던 때였습니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보고 들을 수 있도록 전래동화 단편들이 무채색 일러스트로 연극처럼 연출되는데, 어느 부분에서 달토끼에 대한 부분이 나왔습니다.
그때 수많은 동물 중에서 왜 굳이 토끼인지 문득 궁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째서 일반적으로 달에는 토끼가 절구로 방아를 찧고 있는 걸로 묘사가 되는 건지, 그건 어디서 유래한 건지 저도 전혀 모르고 있더라구요. 아아, 그저 막연하게 그 이미지에 익숙해져서 달에는 방아를 찧는 토끼가 살고있다고, 오래전에 들었던 옛날 이야기에서 별다른 의문을 갖지 않은채, 서른이 넘는 나이가 되도록 살아왔던 것입니다.
지금와서 왜일까 생각해보면 끼워맞출만한 딱히 그럴듯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건 호랑이였어도, 곰이었어도, 심지어 원숭이나 돼지였어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단 말이죠. 호랑이나 곰은 육식 동물이니 방아를 찧는 게 조금 어색하다 할지라도 돼지는 토끼와 마찬가지로 같은 사족보행 동물인데다 식탐도 너 크고 잡식성이라 자연스럽기도 합니다. 원숭이는 인간처럼 앞발을 손처럼 사용하니 오히려 더 자연스러울수도 있구요. 그런데 왜 하필 토끼였을까요?
어느 것이 근본이고 진실인지 지금에서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나라 별로 많은 전승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중국에서는 옥토끼 전설로 달의 계수나무와 얽신 일화가 있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오강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처를 겁탈은 염제의 조카를 죽이자, 분노한 염제가 오강에게 형벌로써 달의 계수나무를 베어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달의 계수나무는 도끼로 찍는 즉시 상처가 회복되는 나무였고, 오강은 영원히 나무를 베어야 하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먼저 달에 올라왔던 달의 여신 월궁 항아는 이를 보며 안타까워했죠. 오강의 처는 남편을 생각해 자식들을 달로 보냈는데, 자식들은 겁탈범의 자식이기도 한 자신들을 오강이 알아볼까 두려워 두꺼비와 옥토끼로 변하여 오강의 곁에 머물렀다는 이야기입니다.
불교에서도 제석천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는데요. 원숭이, 여우, 토끼가 산 속에 쓰러진 노인을 구하기 위해 각자 방법을 강구했습니다. 여우는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공양하고, 원숭이는 나무열매를 모아왔죠. 하지만 토끼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불을 지피고 자신의 몸을 불 속에 던져 스스로를 공양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 노인의 정체가 바로 불교의 신 중 하나인 제석천이었고, 토끼의 자기 희생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달로 올려보냈다는 이야기입니다.
중간중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지만, 말 그대로 전승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그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래서야 어째서 토끼인지에 대한 의문이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은 것 같아 조금 아쉬움이 남네요. 이 외에도 인도나 일본 등의 전승에도 비슷한 뉘앙스의 토끼들이 등장하고, 심지어 아즈텍 신화나 아메리카 원주민들 사이의 전설에도 달에 사는 토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고 하니 인터넷도 없었던 당시에 대륙을 넘어 이정도의 공통적인 설정이 있다는 건 지금 생각해봐도 불가사의인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전승의 영향인지 지금에도 달과 토끼는 같이 등장하는 경우가 흔하고, 여러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에도 심심치 않게 이런 설정이 등장합니다. 직접적으로 방아를 찧는 모습은 아니더라도, 달에 사는 생명체가 토끼로 묘사되는 경우는 더욱 흔하죠.
뭐, 생각할수록 신기한 설정이지만 여전히 어째서 토끼인지에 대한 의문은 남아있는채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그림자극장은 어느새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는 장면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언젠가 딸이 "아빠, 어째서 달에는 토끼가 살고 있는거야? 다른 동물은 없어?" 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을 해줘야 할지, 지금부터라도 고민을 해봐야될 것 같습니다.
'뭘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딸의 "왜"라는 질문에는 되도록 전부 진지하게 답변을 해줄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