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재시작

비직관적인 일상, 직관적인 한 해

by 겨울색하늘

새벽 일찍 눈이 뜨여 머리맡에 놓아두었던 휴대폰을 슬쩍 확인했을 때는 이제 막 새벽 4시를 지나고 있었다. 어차피 20분 뒤에 알람이 울릴 예정이었으니 다시 눈을 감는 건 의미가 없나 싶은 생각이 들어 몸을 일으켰다. 전날 일찍 잠들었던 탓인지 몸이 무겁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다. 다만 허리춤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있어 돌아보니 아이가 내 쪽으로 다리를 곧게 뻗은 채로 있어, 가지런히 내려놓고 조용히 방을 빠져나와 거실로 향했다.

일단 일어났으니 가장 먼저 해야할 건 역시 커피부터. 아메리카노 스틱 두 개를 대충 집어든 머그컵에 털어넣고 따뜻한 물을 적당히 부었다. 티스푼으로 휘휘 저으며 창가쪽으로 가니 밖은 여전히 어스름이 짙게 깔려있는 채로, 아직 잎사귀가 다 떨어지지 않은 나뭇가지 사이로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반짝거리는 풍경. 위로는 검푸른 하늘과 그 사이사이 조금 밝게 흩어져있는 먹구름이 아침이 되면 한바탕 비를 퍼부을 준비를 하는 듯 했다.


토요일 오전, 생각보다 일찍 시작하게 된 하루는 주말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어제와 똑같았다. 옷을 주섬주섬 꺼내입고 출근길에 오른 것도, 아직 햇살을 만나지 못한 새벽 공기가 차가웠던 것도, 낙엽이 노랗게 깔린 보도블럭 위를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도 어제 새벽과 같다. 이윽고 조금씩 밝아지면서 가로등 불빛이 사그라들어,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에는 완연한 아침이 되어있었다.


오전에는 정신없이 한 주간 밀려있던 일을 해치우고 한 숨 돌리는가 싶을 때에는 이미 점심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점심 메뉴는 순두부찌개라는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코트를 걸치고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래도 주말인데', 라는 생각과 '아직도 할 일이 산더미인데', 라는 생각 사이 어디쯤인 상태로 식사 대신 커피를 택했다.


"이렇게 추운데 아아라고?"


언젠가 그렇게 기습적으로 파고들었던 질문이 문득 떠올라, 나도 모르게 일회용 컵에 담긴 커피에 둥둥 떠있는 각얼음을 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그 질문과 함께 옆에 털썩 앉아 똑같이 아아를 마시며 다음 수업 전까지 학생회관의 구름다리 위에서 아래를 지나는 사람들을 생각없이 바라보던 나날들. 이제는 언제였는지 윤곽조차 흐릿한 학창 시절의 단편적인 기억조각들이 날씨가 추워지면 이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른다.


딱히 무언가 인상깊은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단순히 학생회관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셨던 단순한 기억. 도서관에서 나오며 가장 먼저 맡았던 무겁고 습윤했던 새벽공기. 중간고사 전날 잔뜩 취해 잠들었던 기숙사 옆 잔디밭까지. 그 시절의 사소한 기억들이 아무런 개연성도 없이 떠오르고 가라앉고를 반복한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에서 별로 달라진 건 없다. 가방 속에 들어있는 책이 조금 바뀌었을 뿐 날씨가 추워지면 여전히 같은 코트를 입고 목도리를 감는다.

그리고 나는 아무리 추워도 여전히 아아를 마신다.


여유를 잃어버렸던 하반기였던걸까──, 커피를 절반쯤 비웠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해를 시작할 때 세운 계획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그렇게 넋을 놓고 있던 나를 현실로 되돌려놓는 휴대폰의 진동이 있었다. 요점은 아이가 아빠를 찾으니 언제 올거냐는 이야기. '아아──, 이제 가야지', 대답하고는 커피를 마저 비우고 집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먼저 타있던 서너살즈음 되어보이는 아이 둘이서 격한 토론을 하는 중이었다


"이건 물고기야"

"아니야 꿀벌이랑 나비라니까?"


엘리베이터의 열림과 닫힘 버튼을 보고 물고기나 꿀벌과 나비라고 이야기할수 있는 그들의 순수함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와중에 뒤이어 타는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곧바로 닫힘 버튼을 습관적으로 누르는 내가 있었다.


직관적인 것들은 매우 강력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사고의 과정과 일련의 번거로운 정리 과정을 건너뛰고 결론까지 곧바로 데려다준다는 것은 개념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굉장히 편리하면서도 위력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필연적으로 그 과정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을 지나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이 중요한 어떤 것들에서는 매우 치명적인 단점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건 직관을 선택한 순간 체감할 수는 없다.

마치 창문없는 기차에 탄 것처럼 출발지와 도착지, 그 중간에 있었을, 어쩌면 내 시선을 강하게 사로잡았을지도 모를 그 어떤 것을 지나친 사실조차 모르는 것처럼.


올 한 해는 그런 한 해였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출발지와 도착지만 있었던 해. 목표 달성률이 낮았냐고 물어본다면,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달성한 부분도,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었고 나름의 성취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달리 말해서 성장했느냐고 물어본다면 글쎄. 올해의 나는 작년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긴 한 걸까? 확신할 수 없는 게 조금은 부끄럽고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 십여년 전, 처음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던 그 시절의 내가 생각했던 서른여섯의 모습이 이건 아니었을텐데──, 하고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한 숨을 한 번. 한 걸음씩 꾸준히 나아가는 게 그렇게 만만하지 않더라고──, 라고 과거의 나와 대화할 수 있었다면 해줄 말이 참 많았을텐데.


현관문이 열리고 나의 현실이 저 멀리 방에서부터 와다다다 큰 울림을 내며 뛰어온다. 한창 숨바꼭질에 빠져있는 두 살 아기가 아빠의 귀가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방을 내려놓을 틈도, 코트를 옷걸이에 걸어둘 틈도 주지 않고 아빠가 술래라고 말하는 걸 숫자를 세기 시작하는 걸로 받아준다. 과정이 중요한 그 어떤 것, 최소한 한 가지는 바로 눈 앞에 있는 게 아닐까.


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직관적이지 않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글쓰기에 소홀했던 올해의 나는 직관적인 시간을 보냈는지도 모르겠지만.

다시금 펜을 집어들고 이렇게 끄적이는 순간에, 문득 오늘 아침에 낙엽을 볼 수 있었던 것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미 지난 주부터 낙엽은 있었지만 그걸 낙엽으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곧 새하얀 눈 풍경을 볼 수 있는 것도, 겨울이 끝나면 이어질 초록을 볼수 있다는 사실도 얼마나 다행인지.

조금은 마음을 다잡는, 숨 고르기가 필요한 시기라고 주제없이 무작정 써내려간 글을 다시 한 번 읽어보며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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