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결심(2022)’의 완벽주의

by 유일한

*박찬욱 감독 영화 스포일러 있음

어느새 맞잡은 손으로 서로의 온기를 느낀다. 서래의 심장에서부터 울리는 박동이 해준의 손 핏줄을 타고 그의 심장으로까지 닿는다. 차창 밖의 찬연한 빛에 몸을 맡기고 해준은 눈을 감는다. 사랑이 흘렀다. 다만 감각할 수밖에. 미쳐 닫지 못한 미결의 시간을, 끝내 바닷속으로 잠길 필연적인 결심을.

이 사랑을 주목할 수밖에 없겠다. 항상 치정을 다루는 박찬욱은 서로가 서로의 세계를 파괴하는 불가항력의 사랑을 조감했다. <박쥐>의 사랑은 마치 야수가 이빨을 드러내고 사랑하는 배우자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듯한 피비린내 나는 사랑이었고, <스토커>에서 알을 깨고 비로소 성채가 된 이디아는 찰리의 얼굴에 총구멍을 냈다. <아가씨>에서는 비교적 얌전하지만, 이 역시 서로가 서로를 파괴하는 가학•피가학의 관계임은 자명하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아가씨 중에서) 이번의 치정극 역시 가학적이지만 그보다 더 두드러지는 부분은 필연성이다. 피비릿내나는 <박쥐>나 <스토커>와 달리 <헤어질 결심>은 서로가 손을 잡고 산에서부터 깊은 비극의 바닷속을 유영하는 부드러운 이끌림이고 거의 완성된 퍼즐에 마지막 조각을 채우듯 당연한 수순에 가깝다.

둘의 관계는 사랑하는 사이 이전에 형사와 사건의 용의자이다. 이 관계는 역시 구조적으로 다분히 계산되어 있다. 해준은 서래에게 핸드폰을 건네며 패턴을 알고 싶다고 묻는다. 사건 용의자를 조사하기 위해 사망자의 휴대폰 패턴을 알려달라는 이 질문은 소개팅 자리에서 상대방에게 패턴(생활)을 알고 싶다고 묻는 말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 해준은 서래를 감시하기 위해 잠복하며 그녀를 쌍안경으로 지켜본다. 이때 해준은 마치 다른 시공간으로 옮겨진 듯, 그녀의 온기를 바로 앞에서 느낀다. (여기서 굳이 히치콕의 레파토리, <이창>같은 작품을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잠복은 형사로서의 직책이기전에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관음이고 또한 그녀를 지키고자 하는 헌신이다. 하나의 몸가짐. 두 개의 의미. 한쪽이 다른 한쪽을 대신하거나 은유의 원관념, 보조관념 관계가 아닌 동일한 힘을 부여 받는다. 이 이상한 충돌에서 둘의 사랑이 스파크 튀듯 피어오르고 필연적으로 비극 또한 따라붙는다.

사랑은 우연일까. 운명일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다. 하지만 <헤어질 결심>에서의 해준과 서래의 사랑은 둘의 관계가 하나의 세계에 예속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는 이야기라는 인상을 준다. 첫 만남에서 죽은 남편의 모습을 ‘말씀’으로 들을지(영화 속 표현을 빌려) ‘사진’으로 볼지 물어보는 해준의 질문에 서래는 말씀이라고 했다가 사진이라고 번복한다. 해준은 자신에게 찾아온 이 우연한 사랑의 필연성을 직감한 듯, 엷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후에 해준도 자신의 방 벽에 미제사건 사진을 걸어두고 매일 사건에 대해 생각한다고 서래에게 고백한다. 후에 해준이 서래에게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는 ‘꼿꼿해서’라고 말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꼿꼿한 서래와 부드러운 해준은 상보적인 사랑의 특성을 흥미롭게 드러내는 영화의 장치 중 하나이다. 인물의 특성이 서로 퍼즐처럼 맞아떨어지는 내러티브. 이 양태는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공간을 두고 두 인물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정한 간격의 시간을 두고 도착하는 야속한 시차를 떠올려보라. 줄곡동 사건의 용의자를 쫓아 체포하는 해준을 뒤늦게 서래가 차를 타고 따라가 그를 지켜보고, 산에서 기도수를 민 서래의 모습을 그리며 해준이 산을 오르고, 임호신의 살해 현장을 수사하며 지평선을 바라보던 해준의 뒤로 서래가 따라온다. 마침내 둘이 마주 섰다. 그리고 곧 이 만남은 둘의 사랑의 뾰족한 특이점이 되었다.

해준은 서래에게 이 비겁한 운명의 장난에 대해, 자꾸만 미끄러지는 사랑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는다.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서래는 대답한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한 박자씩 늦는 이 간격이 서래의 짖굳은 장난 같았을까. 자꾸만 지나칠 수밖에 없는 관계. 이 관계에서 비로소 둘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정면에 섰을 때 해준은 절망하고 서래는 꼿꼿했다. 이때 카메라는 넓은 화면의 비율로 이 둘의 얼굴이 양 화면의 끝에 서 있도록 한다. 이 영화의 카메라 비율이 마치 이 장면을 위해 존재하는 듯 두 남녀를 카메라 양 끝에 새우고 운명처럼 지나치다 비로소 만난 시간의 관념을 관찰한다. 서래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고 해준의 눈은 우수에 차 있다. 이 평행의 세계에 비로소 들어온 서래는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해준의 말을 떠올려본다. 분명 미제 사건이 생기면 벽에 사진을 붙여두고 계속 떠올려본다고 했었다. 미끄러지는 사랑을 붙잡아두기 위해서 서래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시간의 휘발성을 지우고 싶었고 차이를 맞추고 싶었고 함께 존재하기를 원했던 그녀는 한 가지 결심을 한다.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서래가 한 말은 이 둘의 엇갈린 사랑(시간)과 그녀가 할 수밖에 없었던 결심을 일축한다. 이 마지막 말을 끝으로 서래는 폰을 끄고 바다로 향한다. 해준의 미제 사건이 되기 위해.

이 참혹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이 작위적이지 않은 이유는 이 영화가 가진 완벽주의와 윤회성 때문일 것이다. <헤어질 결심>에서의 사랑은 마치 세상이 탄생하고 인간이라는 생물이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말하자면 아담과 하와가 탄생했을 때부터의 사랑에 대한 하나의 알레고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하나의 단편적인 사건의 발생이라기보단 사랑이라는 보편적 특성을 아우르고서, 배경을 장악하고 비상하는 하나의 세계이다. 산에서부터 시작한 이야기가 바다로 이어지고 서래가 스스로 바다의 지하로 내려가며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사랑으로 빚어진 순환이자 세계의 영속성, 윤회처럼 느껴진다. 또한 우연에 의해 발생하고, 미끄러지고, 다시 무(無)로 돌아가는 사랑은 우리의 삶 자체가 된다. 신화는 예로부터 인간의 감정을 보편적으로 아우르는 이야기를 그렸다. <헤여질 결심>이 다루는 사랑과 죄의식은 치밀하게 짜인 구조로 작위적이기보단 보편적이다. 지금 현존하는 21세기에 한국에서 사랑을 주제로 신화를 그리면 이런 이야기가 아닐까?

결국 영화는 세계를 그리지만 현실의 반영이라기보단 반영의 현실이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부터 시작된 박찬욱의 비현실적 세계는 이번 <헤어질 결심>에서 그 점을 찍었다. 산에서 시작해서 바다에서 끝나는 이 영화는 한국 영화의 미증유이자 오래도록 회자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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