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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아 Apr 03. 2023

친구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의 장. 단

주위에 사람이 아무리 없다고 해도 단 한 명도 없는 건 아니다. 매일 가족과 몸을 부대낀다. 1년에 한두 차례 만나는 친구도 있고 이웃사촌도 있다. 연례행사처럼 만나는 친구와는 12년째 이웃사촌은 6년째 함께 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대부분 혼자인 듯한 기분이다.     


어느 날엔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며 글로 적어 보았다. 심적으로 거리감에서 비롯된 거라는 걸 알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물리적 거리와 심적 거리가 존재한다. 물리적 거리는 만나는 횟수나 함께 보내는 시간 등으로 알 수 있다. 심적 거리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감각으로만 알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게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심적 거리에 크게 영향받는 듯하다. 아무리 자주 만나고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다고 해도 심적 거리를 좁히지 못하면 가까운 사이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반면, 몇 년을 만나지 못해도 (심지어 연락이 닿지 않아도) 당장 만났을 때 어색하지 않을 만큼 가깝게 느끼는 사람이 있다.      




과학적으로 증명하지는 못한다. 착각이나 집착처럼 혼자 그렇게 여기는 거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분명한 건 착각일 수는 있어도 집착은 아니다. 이러한 연결됨의 감각은 아직 서로의 연이 느슨하게라도 연결되어 있어서라고 여긴다. 그간 만나온 인연들을 돌아보면 한 3년이 고비였다. 3년 이상 물리적인 거리가 지속되면 서서히 마음도 멀어진다. 집착했더라면 내 성격상 마음이 멀어지도록 놔 둘리 없다.     


나는 심적 거리가 가까워지면 좋으면서도 불안을 지울 수 없다. 인간관계에서는 마음의 거리가 가까우면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라 그렇다.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조심하지만, 인간관계의 트러블은 애쓴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문제가 생기면 지혜로운 대처가 필요하다. 나에게는 지혜롭게 대처할 능력이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그래서 여러 시각에서 사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잘 되진 않지만;;)     


나뿐 아니라 대부분 가까이 지내는 관계에서 상처를 주고받는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가까울수록 서로에게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된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실망과 함께 상처받거나 갈등을 대립한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가까워질수록 의견 충돌의 횟수가 많아진다. 또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스며든다. 그렇게 서로의 좋은 면과 좋지 않은 면을 교환하며 닮아간다. 사람들은 나와 닮아 있는 사람에게(나와 비슷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질투를 더 많이 느끼며 비교하는 게 특이점이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관계는 가족이다. 가족에게 상처받은 이야기는 대중매체만 보아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래서 소통 강사인 김창옥 교수님은 가족 간에는 더욱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부모님의 피를 빌어 생명을 얻고, 부모님의 땀과 마음이 녹아든 생을 받아먹으며 자라나서일까.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부모-자식 간에는 서로의 삶을 짊어져야 할 의무감이 있다. (세상엔 별별 사람이 다 있어서 부모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도 있고,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처럼 자식이 없는 편이 더 나은 상황도 있다.)      


이젠 가족 간에도 각자도생 하는 시대가 된 듯하다. 부모-자식은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다들 열심히 살아간다. 나 역시도 나의 부모에게, 나의 아이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이 사회에서 내 자리를 만들고 다져나가는 것. 내 자리를 지키는 게 가족을 지키는 일이다.     


정서를 나누는 관계가 딱히 없어서 늘 사람들 속에 지내도 혼자라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도 영 나쁘지만은 않다. 모든 일에는 장. 단점이 있으니까. 혼자여서 가장 좋은 점은 사람에게 볶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속을 썩을 일도, 마음을 다치게 할까 봐 노심초사할 일도, 어떠한 문제를 고민할 일도, 아무것도 없다. 그다음 좋은 점은 누군가에게 감정과 체력을 소모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감정과 체력을 온전히 나에게 쓸 수 있다. 물론, 육아와 살림에 들어가는 기본적인 체력소비와 감정노동이 있다. 그 외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과 관심 가는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다. 두 아이가 10대가 되고 나서 엄마를 덜 찾으니 작년보다 시간이 더 많아졌다.      




아이가 집을 떠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어머니도 조금씩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을 시작하는 게 이롭다. 아이가 클수록 부모보다는 친구를 찾게 되니까. 아이가 품에서 멀어질수록 갱년기와 맞물려 우울증을 호소하는 어머니가 많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덕분에 나는 혼자서도 장시간 잘 논다.      


지금은 아니지만, 2년 전까지만 해도 정서의 단절이 사형선고처럼 느껴졌다. 마음이란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지 모순적일 때가 있다. 정서의 단절이 인간관계를 소홀히 한 죄의 값을 치르는 것만 같아서 타인과의 연결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한다고 되뇌었다. 그러면서도 사람과 접촉하는 게 두려워 누군가 다가오면 문을 걸어 잠그거나 도망치곤 했다. 사람과의 유대를 갈망하면서도 회피했다. 병원에서 진단받고 나서야 이게 마음의 병이라는 걸 알았다.      


소통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호르몬을 분비해 행복감을 준다. 지금은 관계를 회피하거나 도망치지 않는다. 되려 적극적으로 타인과의 연결을 시도한다. 그러나 잘 연결되진 않는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인연은 억지로 만들 수 없는 거니까.      


전생의 연이 닿아 있다고 해도 평생 가는 인연이 얼마나 될까. 인연은 흘러가고 흘러온다. 또 다른 기회가 있을 거라는 걸 안다. 정서를 나누는 친구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각각의 장. 단점이 있다. 어떠한 상황이든 단점은 잠시 접어두고 장점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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