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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아 Apr 11. 2023

우연인 듯하지만, 결코 우연이 아닌

 


 트라우마를 글로 쓰기 전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어지럼증과 구토증상을 호소하며 의식을 잃었다. 20대 때 발작을 일으키곤 했는데, 그게 다시 시작된 것이었다. 아이가 어리고 살림이 넉넉하지 못할 땐 발작도 잠잠했다. 발작이 사라졌다고 믿었다. 착각이었다. 병든 마음은 심연 어딘가에 방치되어 있다가 어이없게도 살만해졌을 때 불쑥 찾아왔다. 그제야 치유되지 못한 마음의 병은 갑자기 사라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살고 싶었다. 

지금은 숨을 고를 여유가 생겼지만, 만 3년을 기를 쓰고 글쓰기에 매달려 살았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야 말겠다는 오기로 시작한 글쓰기는 트라우마 치유 글쓰기로 이어졌다. 척추가 내려앉을 듯이 아파도 컴퓨터 앞을 떠나기 싫었다. 트라우마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였다. 


 그때 썼던 글에 자주 등장하던 문장이 ‘피고름을 짜낸다’라는 것이었다. 트라우마를 글로 마주하는 건 쉽지 않았다. 처음엔 피부를 칼로 째는 듯한 고통이었다. 피고름을 짜내는 심정으로 고통을 감내하며 트라우마를 글로 반복해 썼다. 어떤 장면은 수십 번, 어떤 장면은 백번 이상 글로 마주하며 피고름을 짜낸 자리에 새살이 돋아나는 듯했다.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게 느껴지는데 어떻게 매달리지 않을 수 있을까. 당시 기분은 ‘치유’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두 아이가 없는 대여섯 시간 동안 책 읽던 시간은 글쓰기로 이어졌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늘 책 읽을 시간이 부족했다. 평균적으로 6시간은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지금은 글을 쓰면서 울지 않지만, 한 2년은 울지 않은 날보다 운 날이 더 많았다. 글을 쓰면서 울다 보니 부은 눈으로 아이를 맞이해야 했지만, 속이 후련했다. 육아와 살림을 하며 글을 쓰고 나면 어느덧 밤이었다. 속이 덜 풀린 날에는 두 아이를 재우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러면서도 틈새 시간을 이용해서 책을 읽었다. 난독증을 극복하고 책을 읽는 스스로가 그저 신기하고 좋았다. 글을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던 내가 책을 통해 지식을 쌓고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지만 경이로움은 1년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싶다는 욕심은 강박적인 독서를 불러왔다. 1년에 100권 이상 읽었을 때 책의 권수가 중요한 게 아님을 알았다. 한 권을 읽더라도 깊이 있게 읽어야 함을 깨달았다. 그 뒤로 강박에서 벗어나 다시 독서의 즐거움을 찾아갔다.      


 어릴 적부터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 혼자에 익숙했지만, 혼자 놀 줄은 몰랐다. 그런데 독서와 글쓰기를 만나고부터 혼자 잘 놀게 되었다. 잘 놀다가도 ‘이래도 되나’라는 마음이 되면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애를 쓴다. 너무 소통 없이 지내다 보면 혼자만의 세계에 갇힐 때가 있다. 이럴 땐 섬뜩함과 외로움이 극심하게 밀려와 아이를 끌어안고 온기를 온몸으로 감각한다. 이러다 사회 불안증이 심해져서 다시 병원으로 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워지면, 때로 수원역으로 나가 모르는 사람들 속에 섞여 들어가기도 한다. 강의나 모임이 있는지 찾아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사람과 잘 지내보려고 안간힘 쓸수록 관계가 더 꼬여버렸다. 언제인가부터는 사람이 없는 팔자려니 하고 지내게 되었다. 가족이 있어도 외딴섬 같은 나를 부정하다가 받아들였다. 인문학 글쓰기 수업 마지막 시간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글을 쓰려고 인간관계를 단절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놀란 나머지 잠시 머릿속이 멍하게 흐려지더니 곧 ‘와, 대단하다. 역시 대가는 다르구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글을 쓰기 위해 혼자가 되려는 작가는 하루키뿐만이 아니었다. 세상엔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많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주위에 사람이 없는 나로서는 믿기 어려웠다. 한 편으론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나에게 친구는 1년에 두어 번 만나는 언니 한 명과 동네 노부부가 전부라서. 애초부터 잘라낼 만한 인간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만남을 거절하지 않아도 되니까.



 지난주에 누군가가 나에게 혼자 놀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보인다니 어찌나 다행스럽던지. 친구가 몇 없었을 뿐, 나는 어릴 적부터 사람을 잘 따랐다. 나는 혼자 노는 것보다 사람과 어울리는 걸 더 좋아했다. 지금도 사람과 어울리는 게 좋지만, 예전만큼은 아니다. 그래도 소통의 끈은 절대로 놓고 싶지 않다. 


 아, 사회 불안증을 앓기 전에 친구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사람 3명이 있었다. 절망스럽게도 같은 해에 3명을 모두 잃었지만. 2년, 3년, 10년을 사귄 친구였다. 모두 날 손절 했다. 한 명은 이유를 모르겠고, 한 명은 내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또 다른 한 명은 코로나19 초기에 확진된 게 화근이었다. 자신은 아픈데 남들은 잘 먹고 잘 사는 게 싫다며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를 정리했다. 


 그 뒤로 사회 불안증이 생겼는데, 의사 선생님은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원인을 찾는 것보다 치료에 힘을 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 누구도 탓하고 싶지 않다. 나를 탓하면 우울해지고 사회와 타인을 탓하면 분노가 쌓일 뿐 득 될 게 없다.


 코로나19와 사회 불안증 여파로 마스크 벗는 걸 어려워한다. 다른 사람들도 마스크 벗는 걸 어려워하니 별일은 아니다. 마스크 탈의가 힘들지만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얼굴을 보여줄 수 있다. 최근, 소통이 원활한 누군가를 만났다. 내 직관력을 알아봐 준 사람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내가 가진 직관력을 무서워하거나 기분 나빠하거나 돌+아이로 본다. 그래서 늘 직관력을 꽁꽁 감춰두었는데 그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주었다. 그가 나에게 혼자였기 때문에 글을 썼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글쓰기는 트라우마의 치유이자 살기 위한 몸부림이며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만 여겨왔다. 생각해 보니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 첫 책을 출간한 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모든 건 우연인 듯 보이지만,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걸 다 지나고 보면 결과로써 알게 된다. 


 출간을 실행으로 옮긴 건 나였다. 책을 쓴 결과는 관심과 사랑으로 나타났다. 인연의 끝남은 서로 역할을 다했다는 뜻이다. 반면 새로운 인연의 시작은 서로 역할이 있다는 신호이다. 인연이란 그런 것이다. 서로 역할을 다하면 흘러가는 것. 그간 경험한 모든 일은 우연인 듯하지만, 필연이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지나온 모든 삶이 지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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