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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아 Apr 13. 2023

진실, 거짓, 인간관계의 상호작용

 

무채색 언어를 말해도 코가 길어 질까?



 ‘거짓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부정적인 감정이 든다. 어릴 적 거짓말과 욕은 나쁜 말이라고 배웠다. 성인이 되어서까지 하면 안 되는 말로 금기시해 왔다. 법륜스님은 유튜브 채널 ‘즉문즉설’에서 선의든 악의든 거짓말은 하면 안 된다고 말씀했다. 그러면서도 때에 따라서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며 허용 가능성을 열어 두는 말을 덧붙였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는 게 옳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알면서 진실을 말하지 않거나 거짓말인지 모르고 하기도 한다.


 거짓말은 배우지 않아도 어릴 적부터 시작된다. 거짓말에는 어떠한 목적이 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첫 번째 거짓말은 꾸중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듯하다. 허락도 없이 언니의 색연필을 가져다 썼으면서 부정했다. 청소년기에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학교생활을 물을 때마다 친구들과 잘 지낸다고 말하곤 했다. 어머니를 안심시켜드리고 싶어서였다.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 때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때로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할 만큼 습관적으로 거짓말했다. 


 집이나 약속 장소에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다 와 가.”라거나 “조금만 더 가면 돼.”라고 종종 말한 것이다. 이건 마치 나와 상대방과 이 사회가 거짓말에 합의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대표적인 거짓말 중 하나이다. 


 성별에 따라 흔히 하는 거짓말도 있다. 여자들 사이에서 누군가 요즘 자신이 살찐 것 같다고 하면, 하나도 안 쪘다거나 지금 보기 딱 좋다는 답이 돌아온다.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이 달라질 때도 마찬가지이다. 외향적으로 평소와 조금 다를 뿐인데 너무 잘 어울린다며 호들갑 떠는 상황이 벌어진다. 진실일 때도 있지만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하는 거짓말이 더 많다. 남자들도 다르지 않은 듯하다. 수직적인 관계에서 상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하는 아부가 진실일까. 이러한 거짓말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도덕. 윤리와 큰 관련이 없다.     


표면과 이면


 루소는 자신과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말을 ‘거짓말’이 아니라 ‘허구’라고 명명했다. (『거짓말의 역사』 中_ p.19) 거짓말’과 ‘허구’는 사전적으로 의미가 같다. 사실이 아닌 걸 사실인 것처럼 꾸며 말하는 것이다. ‘거짓말’과 ‘허구’를 가를 수 있는 건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루소는 어떠한 차이를 두려고 했다. 굳이 이분법으로 나눈다면 ‘거짓말’을 악의의 거짓말로, ‘허구’를 선의의 거짓말로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거짓말을 흑과 백으로 나누는 게 맞는 걸까. 어떠한 의도가 없고 해를 입히지 않았다고 해도 거짓말을 선함으로 연결 짓는 건 옳지 않다고 여긴다. 나는 루소가 말한 ‘허구’를 ‘무채색 언어’로, 거짓말을 ‘유채색 언어’로 바꾸고 싶다.


 누군가 자신은 절대로 거짓말 같은 건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건 둘 중 하나이다. 스스로 거짓말하고 있는지 모르거나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자체가 거짓말이다. 무채색 언어는 진실이 존재하는 한 우리와 뗄 수 없다. 온. 오프라인에서 진실 공방이 벌어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진실을 알길 원해서이다. 그런데 진실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혹은 지인에게 “안 본 사이에 왜 이렇게 늙었어?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하네.”라는 현실적인 말을 들으면, 인정하면서도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예의 없는 진실은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다. 


 때로는 진실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문학으로 돈을 못 버는 이유가 사람들이 문학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기보다 당신이 대중에게 인정받을 만한 작품을 쓰지 못했다는 게 진실이다. 온갖 감언이설은 그 속에 숨은 다른 뜻이 있음이 진실이다. 무슨 일마다 늘 피해자라고 말하는 건 자신의 가해를 들키지 않으려는 의도이거나 동정을 얻어 무언갈 취하려는 게 진실이다. 별일 아닌 한 마디에 노발대발하는 사람에게는 일부러 꼬투리를 잡아 당신과의 관계를 끊어내야만 하는 다른 이유가 있음이 진실이다. 무채색 언어는 선의로 가장해 진실인 척하는 언어라는 게 진실이다.      


 대부분은 진실을 긍정적으로 거짓을 부정적으로 여긴다. 진실에도 부정적인 면이 있고 거짓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 진실과 거짓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또한 진실, 거짓, 인간관계는 상호작용한다. 우리에게는 거짓말 중 하나인 무채색 언어와 진실을 때에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판단 능력이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그래서 진심으로 누군가를 대하지 못하면 합리화하거나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모면하고 체면을 지키기 위해 한 말이었으면서, 당신과 나를 위한 일이었다고 합리화하거나 착각하며 서로를 기만한다. 무채색 언어와 진실 사이를 오가야 할 땐 ‘진심’을 잃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 무채색 언어를 잘 못 사용하면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이었더라도 상대방을 초라하게 만들 수 있다.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한 순간부터 무채색 언어는 색깔을 갖게 된다. 그렇게 무채색 언어의 의미는 상실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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